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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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스포츠] 불운 딛고 신데렐라로… 박성현 "내년, 나의 해 만들 것"

올 KLPGA 생애 첫 우승컵 등 3승, 상금 2위 우뚝
‘2016년은 나의 해로 만들겠다.’

2015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신데렐라’로 떠오른 박성현(22·넵스·사진)은 11일 중국 하이커우에서 열린 2016시즌 개막전인 현대차 중국여자오픈(총상금 55만달러·약 6억4000만원) 첫날 보기없이 버디만 8개를 낚아 8언더파 64타를 쳐 쾌조의 출발을 보였다. 디펜딩 챔피언으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활약 중인 공동 2위 김효주(20·롯데)에 2타 앞선 단독 선두다.

지난 6월 불운을 떨치고 메이저 대회인 제29회 한국여자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등 3승을 쌓았고, 상금랭킹 2위(7억3669만원)에 오르며 최고의 한 해를 장식한 박성현의 기세가 좀처럼 꺾일 줄 모른다. 박성현이 시즌 KLPGA에서 독주할 것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올해 국내외에서 무려 8승을 수확한 상금랭킹 1위 전인지(21·하이트진로)가 내년부터는 LPGA투어로 주무대를 옮기기 때문이다.

박성현은 KLPGA 정규 투어가 끝난 뒤에도 KLPGA팀과 LPGA팀 대항전인 챔피언스트로피를 비롯해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4개 투어 대항전인 더 퀸즈컵에 출전하는 등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전남 장흥-부산-나고야를 거치며 3주 연속 이벤트 대회에 출전한 것도 2015시즌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초청받은 것이다. 그는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 스스로도 놀란다.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며,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드라이버 비거리 1위(254.28야드)에 빛나는 박성현은 4주 연속 출전을 강행했다. 첫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2016시즌에 기선을 잡기 위해서다. 지난시즌 29개 전 대회에 개근해 8월 하이원리조트오픈에서 스코어 오기로 실격당한 것을 제외하곤 모두 컷을 통과하는 저력을 보였다.

키 172㎝로 군살이 없는 박성현에게는 늘 ‘장타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마음만 먹으면 300야드를 얼마든지 보낼 수 있을 정도다. 거리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하는 LPGA 신인왕 김세영(23·미래에셋)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퀸즈컵 대회 첫날 포볼매치에서 박성현과 한 조를 이뤘던 김세영은 “나보다 10m 이상은 더 나가는 것 같다. 미국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이라고 말한다. 박성현은 그야말로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거침없이 시원스럽게 스윙을 한다. 장타에다 스핀량이 많은 아이언 샷, 정확한 퍼팅 등 골프를 쉽게 친다. 그의 유일한 장점이자 단점은 ‘필드위의 닥공(닥치고 공격)’이다.

박성현은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경북 구미 현일고 시절 국가대표 상비군을 지냈던 박성현은 2011년 11월 시드 선발전을 치르기 위해 엄마가 운전하던 차를 타고 전남 무안으로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2부와 3부 투어에서 전전하던 박성현은 2013년 2부 투어 상금왕을 차지하면서 KLPGA투어로 올라섰다. 2부 투어 시절 주방 가구업체인 넵스의 박용욱 회장의 눈에 띄면서 후원을 받게 됐다. 1부에 온 뒤에도 지난해까지 챔피언조에 들지 못하는 등 상금랭킹 34위의 그저 그런 선수였다. 장타자이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 늘 OB(아웃 오브 바운즈)에 발목이 잡히곤 했다. 지난 6월 롯데칸타나오픈에서 생애 처음 3타차의 선두로 챔피언조에서 나섰지만 OB를 낸 데다 18번홀에서 1m 거리의 버디를 실패하면서 통한의 우승을 놓치기도 했다. 2주 후 열린 한국여자오픈에서도 5타차의 선두로 최종 라운드를 맞았지만 역시 OB를 내는 등 1타차로 쫓기다가 결국 눈물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OB가 안 나면 불안하다. OB가 한 방쯤 나야 마음이 편하다”고 말하던 박성현은 이젠 OB 울렁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첫 우승 이후 자신감과 함께 OB와는 작별한 셈이다. 세계랭킹 2위인 박인비(27·KB금융그룹)와의 챔피언스 트로피 싱글매치에서는 3홀 남기고 5홀차로 압승해 MVP로 선정된 데 이어 퀸즈컵에선 일본팀의 주장인 우에다 모모코를 맞아 4홀 남기고 5홀차로 완승하는 등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 비해 멘탈이나 스윙, 퍼팅 등 모든 부분에서 한 단계 성장한 박성현은 “장타자의 약점인 그린 플레이를 보강해 더욱 훌륭한 선수가 되겠다”고 말한다.

그는 요즘에도 태권도 선수 출신의 엄마가 운전해주는 카니발을 타고 투어를 다닌다. 이 카니발은 한국오픈 때 우승으로 받은 부상이다. “묵묵히 뒷바라지를 해 주는 엄마에게 많은 빚을 졌다. 좋은 성적을 내는 게 빚을 갚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보이시한 외모에다 파워풀한 스윙을 가진 덕분에 여성 팬들이 많은 편이다. 남달라야 세계 1위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박성현에게는 ‘남달라’라는 팬클럽이 생겨 났다. 그의 캐디백에는 이름이 아니라 ‘namdala’라고 새겨져 있다. ‘남달라’는 이제 그의 애칭이 된 셈이다. 지난 6월 첫 우승 후 만들어진 팬 카페이지만 벌써 회원이 900명에 육박한다. 이들은 부산, 제주는 물론 나고야까지 원정응원에 나선다. 19일 첫 송년 모임을 갖는다. 박성현은 “팬분들의 성원이 있었기에 열심히 달려왔다.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있다. 보다 좋은 성적으로 팬분들의 사랑에 보답하겠다”고 활짝 웃어보인다.

박병헌 선임기자 bonanza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