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김정은 체제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고 예측 불가능하다. 8·25 남북합의에 의해 목함지뢰 사건으로 고조된 남북긴장을 해소하는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렸고, 남북 당국회담이 개최되는 등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가 트이는 듯했다. 중국이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에 류윈산 상무위원을 파견해 장성택 숙청 이후 소원했던 북·중 관계도 회복되는 듯했다.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공연 이후 내년 봄 김정은의 방중과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 가능성도 예상됐고, 미국이 남북관계 개선의 속도를 우려한다는 평가가 있을 만큼 인도적 지원을 비롯해 각종 남북교류협력 사업이 서서히 재개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구본학 한림국제대학원대 부총장·국제정치학 |
북한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북한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정은의 권력승계에 기여했던 리영호와 장성택이 차례대로 숙청됐고, 최근에는 제2인자로 불렸던 최룡해도 사라졌다. 작년 10월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권력실세 3인방이 불쑥 찾아왔고, 지난 2월 미국의 로버트 킹 대북인권특사 초청을 번복했으며, 5월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개성공단 방문을 하루 전에 취소했다. 북측이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어 이번 남북 당국회담이 결렬됐는지, 모란봉악단의 공연이 취소된 원인이 공연 내용의 문제인지, ‘최고존엄’에 대한 모욕 때문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북한의 행동은 예측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과거 냉전시대와 같은 적대적 경쟁과 대립의 국가관계에서는 나의 행동을 상대방이 예측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곧 국가이익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호의존의 협력적 경쟁시대에 나의 행동을 상대방이 예측할 수 없을 때는 불신과 ‘왕따’를 초래할 뿐이다. 21세기 세계화시대의 국제질서는 상호신뢰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화의 시대에 폐쇄와 고립으로 살아갈 방법은 없다. 40여년 전 덩샤오핑의 개혁과 개방으로 중국은 ‘아시아의 병자’에서 이제 국제질서를 좌지우지하는 주요 2개국(G2)으로 거듭났고, 베트남은 ‘도이모이(쇄신)’ 정책으로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 도약하고 있다. 미얀마는 50여년의 군사독재를 종식하고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지향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의 아바나를 방문하고, 아바나에 태극기가 날리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
이와 같이 세계는 변하고 있다. 북한이 폐쇄와 고립을 고수하는 한 김정은체제의 안정성은 불확실하고, 북·중관계의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도 물론 기대할 수 없다. 김정은이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변화가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교조주의이다. 우리 민족의 공존과 공영을 위해 김정은은 교조주의를 버리고 과감하게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구본학 한림국제대학원대 부총장·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