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서울 도심은 연인·가족과 함께 연말 분위기를 만끽하려는 인파로 혼잡했으나 한켠에는 성탄절이 달갑지 않은 이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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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찾은 돈의동 쪽방 골목의 모습이다. 종일 빛이 들지 않는 쪽방 골목의 공기는 연말 분위기로 한껏 들뜬 종로 거리와 대조적이다. 하상윤 기자 |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만난 윤모(79)씨는 25일을 기초연금이 나오는 날로 기억하고 있다. 윤씨는 겨우 발을 뻗을 만한 3.3㎡(1평) 크기의 방에서 홀로 살고 있다. 방 안에는 9인치 TV와 냉장고, 버너, 옷걸이대, 조그만 수납장이 놓여 있었다. 벽 한켠에는 정사각형으로 잘라놓은 신문지 묶음을 휴지 대용으로 걸어뒀다. 윤씨가 사는 5층짜리 건물에는 이런 쪽방 73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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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찾은 돈의동 쪽방 골목의 모습이다. 김옥순(88) 할머니는 60년 넘게 돈의동 쪽방촌에서 살아왔다. 하상윤 기자 |
10년 전 이곳으로 온 윤씨는 성탄절처럼 인파가 많은 날에는 바깥 외출을 삼가는 편이라고 했다. 인파에 밀려난 인근 서울역 노숙자들이 쪽방촌이 있는 골목을 기웃거리기 때문이다.
“젊은 노숙자들 여럿이 둘러싸고 돈을 뺏는데 배길 수 있나. 이 동네는 다들 힘없는 사람이라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
이날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일대 인력시장에는 평소처럼 이른 새벽부터 일거리를 구하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용산? 몇개(얼마)?” 승합차를 몰고 온 구인자와 일거리 조율이 성사되면 곧바로 공사현장으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버는 하루 수당은 적게는 7만원에서 많게는 14만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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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새벽 서울 남구로역 주변이 일거리를 찾아나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은 막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서민들이다. 김주영 기자 |
이들의 입장에선 평소보다 일거리가 줄어드는 성탄절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목수일을 하는 김모(36)씨는 “힘든 일이긴 하지만 먹고살려면 별수 있나”라며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힘든데 크리스마스 같은 건 신경쓸 틈도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인력업소 관계자는 “최근에는 젊은 친구들도 일거리를 찾으러 종종 오는데, 힘만 있다고 일을 잘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공사판에서는 주로 숙련된 노동자를 선호한다”며 “젊은이들은 서너 시간씩 기다리다가 일을 못 찾고 발길을 돌리기 일쑤”라고 말했다.
취업준비생들에게도 성탄절은 우울한 날이다. 이날 오전 찾아간 한국외대 중앙도서관 열람실은 책장을 넘기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책상 위에는 세면도구부터 취침도구, 간식바구니, 여분의 옷이 걸린 옷걸이 등 각종 살림살이가 빼곡했다.
경희대 열람실 앞에서 만난 임용고시 준비생인 김모(31·여)씨는 “마트 생선코너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 조심스러워하는 내 모습이 서러웠다”며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조금 더 나았으면, 지금의 답답한 상태를 벗어났으면 하는 생각밖에 없다”고 말한 뒤 서둘러 자리로 돌아갔다.
박세준·이창수·김라윤·남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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