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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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진 과거사 고리… '한·중 밀월 관계' 흔들리나

[한·일 위한부 합의] 한국외교의 진로 〈2〉 변수 맞은 한·중 관계
12·28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 여파로 동북아 역내 구도가 변화하면 한·중 관계 조정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근혜정부는 그동안 1992년 수교 이후 최고 수준의 한·중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한·중 정상의 통일문제 논의, 중국의 탈북민 문제 협조,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및 발효,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한국 가입 등이 주요 근거로 제시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9·3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 중국 베이징 톈안먼 성루에서 각국 정상 등과 함께 ‘항일(抗日)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전승절) 기념식을 지켜보며 손뼉을 치고 있다. 오른쪽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박 대통령.
베이징=서상배 선임기자
한·중의 ‘우호 모드’에는 동북아에서의 대중(對中) 포위망을 뚫겠다는 중국의 전략적 의도가 반영돼 있다. 중국은 그동안 과거사 문제를 고리로 한·중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중국 부상을 견제하려는 미국 주도의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의 한 축을 약화시키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 12·28 합의로 과거사라는 제어판이 사라지면서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이 급가속화할 조짐이다. 

이명박정부 때도 집권 초기 안정적이던 한·중 관계가 출렁인 적이 있다. 한·중 FTA 논의가 교착상태에 빠지고, 중국의 탈북민 북송과 관련해 한국 및 국제사회의 대중 압박이 거세지자 양국 관계는 급속히 악화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이라는 급변 상황에서 한·중 정상 간 전화통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2012년 3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는 중국 관계자가 본지 기자에게 한국의 탈북민 문제 압박과 관련해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불참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정치학부 교수는 “(중국이 12·28 합의는) 미국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한·중 관계에도 영향을 미쳐 우리가 균형외교를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라며 “우리가 한·일 관계에서는 물론 한·중 관계에서도 ‘과거사’라는 전략적 카드를 너무 성급하게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한·중 해양경계획정 회담에도 12·28 합의의 불똥이 튈 가능성이 있다. 이어도 관할 문제 등을 다룰 한·중 해양경계획정회담은 지난해 12월 제1차 회의에 이어 올해부터 본격적인 협의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동안 부정적 전망도 있었으나 2014년 한·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이 미온적 입장에서 벗어나 적극적 자세로 임하고 있는 점과 우호적인 양국 관계를 들어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특히 중국은 중국공산당 선전선동 부문이 여론을 통제할 수 있어 양국 우호분위기를 적극 부각하면 회담 결과와 관련한 중화민족주의의 발양을 제어할 수 있는 체제다. 북한도 북·중 우호시기에 협상에 나서 1962년 조·중변계(邊界)조약을 체결했다.

신상진 광운대 국제학부 교수는 “12·28 합의로 한·중 관계가 경색되면 이어도 문제를 풀기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다”며 “과거처럼 한국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인지 회의하는 중국이 공세적으로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탈북민 처리 문제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중국은 탈북민의 절대 다수가 경유하는 제1차 도착지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 중국 당국은 중국 영토 내에서 탈북민이 체포될 경우 “탈북민이 희망하는 지역으로 보내달라”는 우리 정부의 요청을 감안해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청중·염유섭 기자 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