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적 호기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사안이 예사롭지 않다. 중견 사상가요, 시인이요, 문화평론가이기도 한 그는 사상서 등 100여 권의 저서를 집필하면서 동서양 사상을 넘나드는 경지에 이르렀고, 이데아와 과학 등 이른바 ‘보편자’를 찾으려 한 서양철학의 작업은 실패했다고 주장해 적잖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저자에 따르면 예수에게 메시아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고, 재림예수를 기다리게 하는 구세주의 유형을 만든 것은 인간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엄청난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 메시아는 항상 기다리면서도 정작 육신을 가진 실체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메시아는 항상 내일에 와야 할 존재, 끊임없이 기다리게 하는 존재, 기다리는 희망을 가지게 하는 존재로 남아 있어야 한다.
왜 그럴까. 정치권력의 속성상 만약 누군가가 세상을 구원한다고 나선다면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돼 불편하거나 제거 대상이 된다. 종교는 정치의 원형이기에 더 말할 나위 없다. 메시아임을 자처한 예수도 죽음을 면치 못했다. 결국 과거와 미래에만 존재해야 하는 메시아는 인간이 만들어놓은 시간의 장난에 불과하다. 그러나 메시아는 현재적 존재가 돼야 옳다. 예수도 당시에는 현재적 존재였다. 오늘날에도 메시아는 미래적 존재가 아니라 현재적 존재가 되지 아니면 안 된다. 현재가 부재한 메시아사상은 서양기독교의 결정적 내용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의 결함이요, 핸디캡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구세주를 마냥 기다리는 메시아사상은 서양기독교의 결정적 내용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의 결함이요, 핸디캡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을 끌고 있다. 그림은 시몽 부에 작 ‘예수 수난상’. |
그 메시아적 사명을 스스로 수행하는 인물이 나타날 때 메시아사상은 실현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절실히 깨달은 인물이 문 총재였다. 문 총재는 한없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아니라, 스스로 담당하고 실현함으로써 메시아의 전범을 보였다. 예수도 과거에 실패한 메시아가 아니라 당시 현존적으로 메시아를 실현한 인물이며, 문 총재 역시 재림메시아가 아니라 현존적으로 메시아를 실현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문 총재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가 “메시아를 기다리지 말고 너희가 메시아가 돼라”고 인도한다.
자기 주장으로만 메시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에 걸맞은 삶과 인생역정, 인류에 대한 기여, 평화를 위한 노력과 희생, 지상의 복지구현에 끼친 영향 등을 살펴봐야 하는데, 이것은 각자가 판단할 수밖에 없다. 다만 지은이는 문 총재가 통일교와 통일원리를 통해 하나님의 소원인 인류의 평화를 위해 일평생 혼신을 다해 헌신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문 총재는 신을 부정하는 공산주의의 종식을 위해 투쟁함으로써 마침내 그 결실을 거두었고, 인종 간·종교 간 화합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고 있다. 역사상 당대에 그러한 성과를 거둔 인물은 문 총재가 유일하다고 한다.
지은이는 통일교가 기독교적 보편성의 종교를 불교적 일반성으로 내려오게 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길, 누구나 신이 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한 탁월한 신학적 종교라고 평한다. 그는 기독교에서 출발한 통일교를 ‘대승기독교’라고도 표현했는데, 이는 신마저도 불쌍하게 여긴 문 총재의 깨달음과 사상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문 총재는 “내가 신이 되지 않으면 신은 없다” “내가 메시아가 되지 않으면 메시아는 없다”는 진리를 몸소 깨닫고 실천한 인물이며, 스스로 그러한 경지에 도달했기에 메시아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
기독교의 구원신앙은 그동안 인간 삶에 많은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외려 인간을 사악하게 만들고, 인간을 욕망의 노예로 만들며, 끝내 스스로 만든 족쇄에서 허덕이는 존재로 만들 것이라고 비판하는 지은이는 그러한 기독교는 해체돼 새롭게 발전하거나 아니면 종막을 내려야 한다고 쓴소리한다.
메시아사상을 재해석하는 중요한 단초가 될 책이다. 지은이는 문 총재의 삶과 사상을 예수와 붓다, 니체의 초인 사상 등과 비교해 설명하기도 하는데, 문 총재에 관해 심오하면서도 방대하게 분석해 놓아, 이 책이야말로 ‘문선명 평전’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들게 한다. 이만 한 독창적 ‘평전’은 아주 오랫동안 나오기 힘들 것 같다.
정성수 문화전문기자 tol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