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위원장이 깃발을 들어올리기 훨씬 전 금융권 한 귀퉁이에서 ‘거친 개혁’은 진작 시작됐다. 증권업계 돈키호테로 불리는 주진형(57·사진) 한화투자증권 사장이 주인공인데, 그가 2013년 9월 취임 이후 줄기차게 쏟아낸 개혁 조치들은 안팎으로 비난과 반발의 파열음을 내는 ‘거친 개혁’이었다. 아래선 불통의 낙인을 찍고 위에서는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외로운 개혁’이기도 했다.
지난해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추진 당시 증권사 중 유일하게 합병 무산 가능성을 지적하며 삼성물산 매도 리포트를 낸 것은 일례다. 당시 한화그룹은 삼성그룹을 의식해 곤혹스러워했고 주 사장과 그룹 갈등설이 불거졌다. 지난해 9월 말 임기 6개월 남은 그의 자리에 후임이 사실상 내정됐다. 주 사장은 3월 물러난다. 그의 개혁도 추진동력을 잃고 결국 좌초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의 개혁은 가시적 성과는커녕 당장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과다한 고객 주식매매와 직원 자기매매 제한조치는 수수료 수익 수백억원을 포기하는 일이다. 직원 성과급도 줄어든다. 단단한 먹이사슬이 되어버린 기득권과 싸우는 위험도 각오해야 한다. 지난해 전산장비 구입처를 한화SC에서 IBM으로 바꾸려다 압력을 받았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일감 몰아주기에 반대하다 사퇴 압력을 받았다는 것인데, 주 사장은 “그건 아니다”고 부인했다. 매도 의견의 리포트를 내는 일도 해당 기업에 ‘찍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의 개혁은 지점장 중심의 집단 항명사태까지 야기했다.
기득권의 반대편엔 고객의 이해와 권익이 있다. 불필요한 과당매매 제한, 매도 의견의 리포트 비중 확대, 분기별 고위험등급 주식 선정 발표 등은 기득권이 된 관행을 깨고 투자자의 이해를 돌보는 일이다. 그의 개혁은 한마디로 고객에게 다가가는 과정이다. “소수의 고객을 갖고 잦은 주식거래로 수수료 수익을 챙겨 보너스를 받기 원하는 직원은 고객 보호를 통해 영업하려는 우리 회사가 원하는 직원이 아니다”, “고객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지 직원 인센티브 챙겨주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말인가.” 등등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들을 보면 개혁의 지향점이 분명하게 읽힌다.
정부가 민간 금융권에 직접 개입해 ‘거친 개혁’을 추진할 수는 없다. “금융 공기업에 성과주의를 도입하고 그 영향이 민간 영역으로 확산되기를 바랄 뿐”(금융위 관계자)이다. 결국 민간의 ‘거친 개혁’은 스스로 해야 하며 누군가 앞장서야 한다. 주 사장은 지난해 9월 말 개혁 실패 전망이 잇따르자 “개혁의 성공 여부는 시간이 흘러 고객이 판단하는 것이지 사장 연임 여부를 갖고 예단할 일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개혁은 계속 진행 중이며 판단은 고객이 한다”는 것이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