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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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2016 '가계빚 잔치'가 시작됐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720조원 수준이던 가계부채는 지난해 9월 1166조원까지 급증했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4.4%로 주요 18개 신흥국 중 가장 높다. 한국은행도 부채 가구의 10%인 112만 가구를 부실위험가구로 보고 있다. 물론 가계부채에 대한 경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먼저 부동산 시장에 불을 지폈고 주택대출을 대거 풀어왔다.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3분기 성장률이 1.3%로 5년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도 부동산 경기 호조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호황에는 그림자가 따르게 마련이다. 전셋값 급등, 가계대출 급증이 그런 것들이다. 경제의 근본 체질은 개선하지 못하고 ‘반짝 경기부양’에 그친다는 한계도 있다. 금리 상승기에 부동산 가격이 급락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가계부채 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유도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가계부채 1200조원 시대. 과연 이 말은 맞을까 틀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금융기관 대출과 카드빚을 합한 가계신용은 1200조원을 육박하는 게 맞다. 그러나 여기에는 ‘민간인들간의 거래’인 전세보증금이 빠져 있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는 이 전세보증금의 규모를 약 450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해 6월 언론사 경제부장단과 만난 자리에서 이를 400조 안팎으로 추정했다. 최 장관은 전세보증금에서 은행에서 빚낸 것이 200조~300조원이며, 이 액수는 이미 가계부채 통계에 포함돼 있다고 강조했다.

◆가계부채 사실상 1400조원에 달해

이 점을 감안하면 가계부채 가운데 은행에서 빌린 금액을 뺀 150조~250조원 가량, 다시 말해 200조원 안팎의 돈이 정부의 공식 통계에서 잡히지 않는 개인들간의 부채인 '+α'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를 포함하면 어림잡아도 가계부채는 사실상 기존의 1200조원을 훌쩍 넘어 1400조원에 달하게 된다.

때문에 미국 금리인상 등으로 인한 거시적인 금융환경의 변화와 대출규제 및 부동산 시장 공급 과잉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집값이 하락할 경우, 공식적으로 파악도 하지 않고 있는 전세보증금이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현재 한국은행에서 통계를 내고 있는 가계신용에는 금융기관을 통한 대출과 판매신용, 즉 카드빚이 포함된다. 개인간의 거래인 사채는 제외되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 국가에서는 금융기관을 통한 대출을 가계부채로 보고 관리하면 된다. 그러나 한국에는 전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전세'라는 제도가 존재한다. 전세보증금은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고 개인끼리 거래하는 돈이다. 보증금은 임차인에게는 금융자산이지만 임대인에게는 실질적인 가계부채가 된다.

◆전세보증금, 임차인에겐 금융자산 vs 임대인에겐 가계부채

집값으로 대변되는 임대인의 자산이 꾸준히 오르고, 또 집값과 전세값의 차이가 크다면 집주인에게 맡겨둔 전세보증금은 큰 걱정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이 80%를 넘는 지역이 등장할 만큼 전세가와 매매가의 격차가 좁혀졌다는 것이다. 집값의 80%에 해당하는 돈을 집주인에게 이자 없이 빌려주고 있는 꼴이다.

KB국민은행 부동산알리지(지난해 11월16일 기준)에 따르면 아파트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을 따져봤을 때 ▲서울 성북구(82.1%) ▲강서구(80.1%) ▲경기 고양 덕양구(80.1%) ▲의왕시(81.1%) 등이 80%를 넘겼다. 서울 동작구(79.6%)·구로구(78.5%)·성동구(77.1%), 경기 고양 일산서구(79.3%)·일산동구(78.5%) 등도 80%에 근접한 상황이다.

◆대출규제·금리상승·공급과잉 등 부동산시장 악재 수두룩

물론 집값이 계속 상승할 것이냐 하락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적어도 작년보다는 상승률이 둔화될 것이라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다. 특히 올해에는 대출규제와 금리상승, 공급과잉 등 부동산시장 악재가 도사리고 있어 마냥 긍정적일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금리가 단기간에 급속도로 오를 가능성은 없지만, 미국 금리 인상으로 우리 금리도 인상 가능성이 커진 것은 분명 주택 수요 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올해부터 정부가 주택담보 대출규제와 중도금 대출 간접 규제를 시작하는데다가 작년 분양물량은 40만 가구가 넘어 과잉 논란까지 일고 있다. 이들 분양 물량의 입주 시기는 2017년 하반기에서 2018년이 될 전망이다.

시장 악재로 주택 가격이 전세보증금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를 '역전세', 혹은 '깡통전세'라고 부른다. 송인호 KDI 연구위원은 "금리인상에 대한 압박이나 다른 외부요인으로 주택 가격이 하락하면 깡통 전세가 나올 수 있다"며 "이전에도 역전세난을 경험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2017년 말이나 2018년 일부 지역에서는 역전세 난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17년 말~2018년 초, 역전세난 재현될 우려

역전세난이 발생하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기 힘들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집을 팔아서 보증금을 빼 주더라도 이미 집값이 보증금보다 떨어진 상태라면 경매 등을 통해 집을 처분하더라도 세입자의 피해를 피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최근 전세값이 크게 오른 만큼 전세대출을 받은 세입자라면 대출이자를 감당하는 동시에 집값 하락의 부담까지 집주인과 나눠 져야 하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렇듯 주택시장이 변화무쌍한데도 정부는 전세보증금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도 명확하기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급한대로 KDI가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명시된 평균 전세보증금에 전세가구수를 곱해서 추정한 값이 450조원이다. 개인간 거래인 전세보증금은 가계부채의 잠재적 위험이라 볼 수 있는 만큼 증가 속도와 구조를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는 게 KDI의 판단이다.

◆'개인간 거래' 전세보증금, 가계부채의 잠재된 위험

송 연구위원은 "은행을 통한 전세자금대출로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있지만 가족이나 친지에게 전세보증금을 빌린 경우도 많은데 이 부분은 통계로 잡히지 않는다"며 "공식 통계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되면서 빚 상환에 취약한 고령층과 저소득층 등에 대한 대출은 이미 위기에 놓였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취약 계층에 대한 대출은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은데,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른 국내 시장금리 상승으로 이자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면 '집단부실'로 이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

◆대출금리 1%p 오를 때 이자부담 5조8000억원 ↑

특히 자영업자나 고령층 대출은 전체 가계부채의 약 40~50%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집단부실이 발생할 경우 전체 가계빚의 질을 급속도로 악화시키면서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뇌관으로 작용될 위험이 크다.

KDI가 201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토대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50대 이상의 중고령층 대출이 차지하는 가계부채 비중은 53%로 집계됐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3분기 기준 전체 가계대출 1102조6000억원(가계부채-판매신용) 중 약 584조원이 중고령층 대출이라면, 대출 금리가 1%p 오를 때 이자 부담이 5조8000억원 가량 증가하게 되는 셈이다.

은퇴가 본격화되는 60대 이상부터는 실질적인 소득은 줄고, 이자까지 늘게 돼 가계 부담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이들 대출의 절반 이상이 만기가 도래하면 한 번에 빚을 갚아야 하는 '일시상환' 방식이어서 원금 상환 시기가 오면 빚 상환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김지섭 KDI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고령층은 구조적 요인으로 연금과 이전 소득 등이 주요국 대비 낮아 부채 상환여력이 취약한 반면, 부채 규모는 상대적으로 과중한 상황"이라며 "소득 안정성이 취약한 고령층의 부채 상환부담이 더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소득 안정성 취약, 고령층 부채 상환부담 더 커졌다

뿐만 아니라 주로 고금리 대출에 몰려있는 저소득층 대출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소득 하위 20%(1분위)가 전체 가계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3%에 불과하지만, 저소득층 대부분은 제2금융권 등의 고금리 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아 다른 가계에 비해 이자 부담이 더 크다. 소득 1분위의 가처분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비중은 68.7%로 상위 20%(5분위)의 약 3배에 이르고 있다.

저소득층의 경우 소득에 비해 빚이 증가하는 속도도 더 가파르다. 2014년 통계청 등이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1분위)의 가계부채 증가율은 2014년 대비 14.36%로 전체 평균인 3.04%의 5배에 달할 만큼 빨랐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