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 들어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가신 그룹인 동교동계 좌장 권노갑(86)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은 이렇게 말하고 탈당했다. 회한 때문이었을까. 그는 말을 자주 멈추었고, 시선은 가끔 천장을 향하곤 했다. 회견장을 빠져나오는 사이 두 다리는 크게 휘청거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신그룹인 동교동계 좌장 권노갑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당을 선언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
권 고문은 이날 탈당 이유로 “연이은 선거 패배에도 책임질 줄 모르는 정당, 정권교체의 희망과 믿음을 주지 못한 정당으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확신과 양심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회견 직후 오전 10시40분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가 김 전 대통령 묘역을 조용히 참배했다. 이날 김옥두·이훈평·남궁진·윤철상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 10여명도 함께 탈당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도 내주 탈당을 예고했다. 13일엔 주승용(전남 여수을), 장병완(광주 남구) 의원이 탈당할 예정이다.
동교동계가 DJ 및 호남을 일정하게 상징해 왔다는 점에서 동교동계의 더민주 이탈은 친노(친노무현) 및 86그룹과 호남 정치세력의 결별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해석된다.
김 전 대통령은 1987년 이후 86그룹을 중심으로 재야 및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한 개혁세력을 지속적으로 수혈하며 야권 확장을 시도했다. 그래서 1997년 김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첫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이뤘고, 2002년엔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의 기쁨도 맛봤다. 그러나 호남 대 친노 및 개혁세력은 2003년 대북송금 특검과 열린우리당 창당, 2004년 탄핵 등을 거치면서 내부 갈등으로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다.
권 고문의 탈당 배경에는 문재인 대표와 친노 세력에 대한 실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권 고문은 이날 “당 지도부의 꽉 막힌 폐쇄된 운영방식과 배타성은 이른바 ‘친노패권’이란 말로 구겨진 지 오래됐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당 대표실에서 진행된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의 입당 기자회견에서 환영의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
호남 민심의 더민주 이탈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통화에서 “권 고문 하면 곧바로 DJ가 떠오른다는 점에서 그의 탈당은 호남 민심이 더민주를 떠나고 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문 대표에겐 상당한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야권의 전통적 기반인 호남이 크게 흔들리게 돼서다.
일각에선 실제 파급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당의 한 관계자는 “동교동계가 정치적 상징성은 있지만 현실적인 힘을 지녔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호남 민심을 놓고 더민주와 안철수 신당 간 혈투가 예고된다. 최 교수는 “민심이 아침저녁으로 변하기는 하지만 문 대표가 호남 출신 인물을 몇 명 영입한다고 호남 민심을 되돌릴 수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민주가 “분열의 길을 선택한 뜻을 헤아리기 어렵다”면서도 “다시 만날 걸 믿는다”(김성수 대변인 등)고 희망의 끈을 놓치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