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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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메모] 유일호 부총리와 연대보증의 덫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후 청와대에서 신임 장차관급에 대해 임명장을 수여했다. 유일호 신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임명장을 받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연대보증 피해구제, 실정법 내에서 바꿀 수 있다면 정말 바꿀 용의가 있다.”

13일 취임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부인의 빚 보증 채무와 관련해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재직하던 1996년 가까운 친인척의 부탁으로 거액의 연대보증을 섰다가 빚을 떠안아 당시 살던 아파트와 은행 예금까지 차압당했다고 한다.

부인 앞으로 1억5000여만원의 빚이 남아 있지만, 모든 재산 명의가 유 부총리 앞으로 돼 있어 부인은 채무를 갚지 ‘못’하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김수미 경제부 기자
유 부총리는 상속받은 유산과 국토교통부 장관, 재선 의원을 지내며 모은 재산이 10억원대지만, 독립재산제에 의거해 부인의 채무를 갚아줄 의무가 없다. 이 때문에 부인의 채무를 회피하려고 재산을 모두 유 부총리 명의로 옮겨놓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가시지 않는다.

그러나 유 부총리는 ‘선의의 피해자’다. 빚을 진 주채무자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상태가 됐을 때 보증인에게 채무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일반 보증과 달리 연대보증은 주채무자가 파산 혹은 연락두절 상태가 아니어도 보증인에게 대신 돈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빚 연좌제’라는 비판이 일면서 연대보증제는 2013년부터 은행과 제2금융권에서 금지되고 있다. 그런데도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신용회복위원회에 연대보증 채무조정을 신청한 사람이 1만655명에 달한다.

이들이 떠안은 채무는 모두 4247억원, 1인당 평균 4000만원이다. 그리고 여전히 대부업계 일각에서는 보증대출이 이뤄지고 있다.

유 부총리에게는 아픈 과거지만, 그래도 부총리 덕분에 연대보증 문제를 다시 살펴본다니 다행이다. 그러나 단순히 멀쩡한 사람도 알거지로 만드는 연대보증에 국한하거나, 유 부총리 같은 보증인들을 구제하는 선에 그쳐서는 안 된다.

연대보증 제도가 왜 생겼고, 누가 그 제도를 통해 이익을 봤는지, 금융당국이 왜 대부업체에만 연대보증을 허용했는지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연대보증 피해구제가 진실로 금융취약층 구제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수미 경제부 기자  leol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