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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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못받던 ‘남해안 공룡 발자국’ 재조명 탄력

신종 인정 받고도 상대적 가치 저평가
구애행위 ‘흔적 화석’ 최근 미국서 발견
남해안 화석 성격 비슷… 주목도 높아져
수년간 추진 유네스코 유산등재 청신호
‘드로마에오사우리푸스 진주엔시스’, ‘드로마에오사우리푸스 함안엔시스’, ‘오르니토포디크누스 마산엔시스’. 발음조차 쉽지 않은 공룡들의 이름이지만 ‘진주’, ‘함안’, ‘마산’은 바로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 남해안에 면해 있거나, 인접한 지역들이다. 세 공룡의 발자국 화석이 각각의 지역에서 발견됐고, 국제학계에서 신종으로 인정받아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지난 7일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육식공룡의 구애행위를 보여주는 화석이 처음 발견됐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우리 입장에서 이 화석이 남해안 화석과 성격이 비슷한 ‘흔적화석’(공룡의 생태를 보여주는 화석)이어서 더욱 반갑다. ‘골격화석(공룡의 생김새를 보여주는 화석)에 비해 저평가되어 있던 흔적화석의 가치를 재조명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연구진이 참여한 구애행위 화석의 발견으로 세계 최대 규모인 남해안 공룡 화석산지에 대한 주목도가 크게 높아졌다. 그간 추진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남해안 지역에서 발견된 다양한 형태의 공룡 발자국화석과 알화석은 공룡의 생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뛰어난 가치를 가진다. 아래 사진은 발자국을 확대한 모습.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왜 남해안일까

발자국 화석은 1982년 경남 고성군 덕명리 해안가에서 처음 확인된 이후 전국 100여곳에서 잇달아 발견됐다. 특히 남해안 지역에는 수량이 많고, 다양한 공룡들의 발자국이 모여 있다. 형태도 뚜렷해 세계 최고의 화석산지로 꼽힌다. 남해안에 이처럼 화석이 많은 이유는 뭘까.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약 2억2500만년∼6500만년 전)의 지층이 남해안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 우선 꼽힌다. 바닷가 지역이라 파도 등의 오랜 침식작용으로 화석이 노출되어 발견이 쉽기도 하다. 인근의 화산활동으로 화석을 품은 퇴적암의 강도가 높아진 점은 화석이 온전하게 남아 있을 수 있는 조건이 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공달용 연구사는 “1억년 전 남해안 지역은 큰 호수를 끼고 있어 생존에 필수인 물이 풍부했다”며 “호수 주변으로 숲이 발달돼 초식공룡이 많았을 것이고, 초식공룡을 노린 육식공룡도 몰려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석이 증언하는 공룡의 생태


남해안에서 무더기로 발견되는 크고 작은 발자국 화석은 공룡이 가족 생활을 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구소 임종덕 연구관은 “어미와 새끼가 같이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며 “골격화석으로는 알 수 없는 공룡의 생태”라고 말했다.

남해안에서는 상당히 많은 공룡알 화석도 발견된다. 전남 보성의 비봉리에는 해안을 따라 약 3㎞에 걸쳐 21개의 알둥지와 190여개의 알이 발견됐다. 재밌는 점은 알화석이 발견되는 지역에서는 골격화석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룡이 거주지와 산란지를 구분했다는 걸 전하는 특징이다. 산란기에는 거주지를 떠나 알을 보호하기 쉬운 좀 더 은밀한 지역으로 이동한 것이다.

◆세계유산 등재 탄력받나

정부는 2009년 유네스코에 남해안 화석산지를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해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전문가 현지실사 과정에서 “국제비교연구가 부족하다”, “뼈화석에 비해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조금 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남해안 화석의 중요성을 모르겠다는 의미로 등재신청은 철회됐다.

미국 콜로라도에서 구애행위 화석이 발견된 것은 이런 판단을 역전시킬 호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수컷 육식공룡들이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땅을 긁어대는 행위를 했다는 걸 보여주는 구애행위 화석의 최초 발견으로 흔적화석의 중요성이 분명하게 부각됐기 때문이다. 남해안 화석산지의 등재를 위해 구애행위 화석을 발견한 연구에 참여했던 국내 연구진의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임종덕 연구관은 “구애행위 화석의 발견은 공룡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정확하게 제시하는 증거라는 점에서 흔적화석의 중요성을 확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국제비교연구의 일환으로 올해는 포르투갈 등 유럽 지역으로 연구를 확대해 가겠다”고 밝혔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