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들에 의문부호를 첨가하기도 한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해주거나 성찰을 유도하기 위해서다.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이원호 작가는 최근에 재미있는 전시로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들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
소유자들에겐 진위를 떠나 어머니나 아버지,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등 선대의 이야기와 손때가 묻어 있는 물건들이다. 가족의 역사와 정이 듬뿍 쌓여 있는 것들이다. 기대했던 가치들이 단 몇 분 만에 감정을 통해 무너졌을 때 소유자들은 처음엔 허탈해하지만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포장해 가져간다. 또 다른 가치가 거기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것에 주목해 그 물건들을 전시장에 내놓는 파격을 감행했다.
기존 잣대에서 사물의 가치는 사라졌지만 그 뒤에 숨겨 있는 사물과 관계된 소소한 개인적인 사건들의 중요성을 불러내기 위해서다. 진위 감정을 통해 재화로서의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지만 더 소중한 심리적 가치를 환기시켜 주기 위한 작업이다. 그 어떤 보물이라도 이를 대치할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상대적 가치가 아닌 진정한 자신만의 절대적 개별 가치의 얘기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어떤 가치를 위해 뛰어왔는지 되돌아볼 때다. 현실은 상대적 불평등과 갈등만이 날로 증폭되는 사회가 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무한한 진보와 발전을 담보로 상대적 가치의 우위를 지상과제로 부르짖고 있다. 이제 개별적 절대가치들을 자리 잡아 가게 하고 그것의 관계성에 치중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할 시점이다. 거창한 구호나 이념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상대적 가치엔 우리의 실제적 삶의 리얼리티가 없다. 노동개혁도, 산업구조 개혁도 이런 인문학적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한다.
한 해가 시작되는 1월이다. 삶의 비중을 어디에 둬야 할까 고민해 보는 시기이기도 하다. 나의 절대적 가치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냥 거기에 있어 줘 오늘이 있게 한 존재들일 것이다. 아내이고 남편이고 자식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건 가장 가까운 것들임이 분명하다.
어쩌면 우리는 화려한 광고문구에 이끌려 상품을 소비하듯 상대적 가치들을 소비하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들은 대상마다 개인마다 서로 다른 깊이와 층위를 갖기 마련이다. 단순하거나 명료하지도 않다. 논리적일 수도 없다. 모두가 고유의 개체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가치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더 이상 광장에서 군중을 향해 부르짖는 것과 같은 정치행위는 설득력이 없다. 국민단합의 외침도 예외가 아니다. 대중강연과 명설교자들의 몰락도 같은 맥락이다. 상대적인 것이 더 이상 객관적인 것이 아닌 사회가 됐다. 거대담론성 대중 구호는 이미 지난 세기의 유물이 아닌가. 진정한 진품명품의 가치는 개별적 절대의 자리에 있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