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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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음악감독 박칼린은 잠시 잊고… 배우는 배우짓만 해야죠"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로 무대 다시 서는 박칼린
박칼린(48) 음악감독은 바쁘기로 유명하다. 맡은 공연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한창 때는 분 단위로 일정을 짠다. 이런 그가 몇 달씩 시간 내 꼭 무대에 서온 작품이 있다. 3월 13일까지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이다. 박칼린은 여기서 음악감독이 아니라 조울증을 가진 주부를 연기한다. 2011, 2013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박칼린은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에 세 번이나 주연 배우로 참여하는 이유에 대해 “순전히 작품 자체의 힘”이라고 말했다.
남정탁 기자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박칼린이 선택한 뮤지컬이니 믿고 봐도 되느냐’ 물었다. “‘박칼린’은 빼도 돼요. 작품이 원체 좋아요. 미국에서 이 작품이 처음 나왔을 때 뮤지컬계 인사들 사이에 ‘놓치지 말고 보라’는 말이 돌 정도였어요. 이런 소재를 록음악을 써서 유머 있게 푼 경우가 드물어요. 40대 부모를 세게 달리는 록음악으로 표현하는 일이 흔치 않아요. 또 동시대 사회 문제를 심각하지 않고 위트 있게 잘 다뤘어요.”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세트, 조명 심지어 의상까지 영리하게 잘 만들었다”고 한다. 마지막에는 큼지막한 눈에 미소를 담으며 “미국, 독일, 북유럽에서도 이 작품을 했는데 한국 버전이 제일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박칼린은 ‘넥스트…’ 때문에 20여년 만에 연기에 재도전했다. 음악감독은 그가 아닌 이나영이 맡고 있다. ‘베테랑’ 음악감독인 그로서는 다른 이가 음악을 요리하는 걸 보며 손이 근질근질할 법도 했다.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배우는 배우짓만 해야 해요. 내려오는 체계와 법도가 있어요. 스태프끼리는 작품을 위해 서로 선을 넘으며 옥신각신하죠. 하지만 배우는 여기에 개입해서는 안 되고 시간도 없어요.”

박칼린은 배우가 아닌 음악감독으로 이름을 알려왔다. 연출가로도 성공적인 길을 걸었다. 세 가지 일을 넘나들지만 특별히 더 선호하는 작업은 없다. 그는 “꼭 하고 싶은 작업을 맡기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다 행복하다”고 말했다. 현재에 집중해서인지 거창한 미래 계획도 세워본 적 없다.

“늘 일 하나를 똑바로 하면 다음 일이 와 있었어요. 몇 년 뒤에 이거 해야지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한 사람이 그간 해온 일이 미래를 정해주는 것 같아요. 3년간 일이 정해져 열심히 하다 보면 다음 3년이 정해지는 식이었죠. 표현이 이상할진 몰라도, 정말 물 흐르듯 왔어요. 물론 물 속에서 노 젓는 건 열심히 했어요. 칠렐레 팔렐레 있지는 않았죠.”

대중매체에 비친 그는 화려하지만, 실제의 그는 명예욕이나 야망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훗날 지금 위치에서 내려오는 순간 서운하지 않을지 묻자 그는 되레 “빨리 내 자리 넘겨주고 제자들이 자리 잡으면 제일 행복하고 부담 없을 것”이라며 웃었다.

“60, 70살을 상상해도 허무하거나 불안하지 않아요. 기분 좋은 상상은 있어요. 이빨 빠져서 아무것도 못할 때쯤, 우리 제자들이 공연하면 제가 와이셔츠 다려주고 의상을 챙기는 거예요. 후배가 지휘해야 하면 밥 싸서 가고, 누가 갑자기 일본 공연 가면 ‘가방모찌’를 하는 거죠. 개인 욕심은 별로 없어요. 후배들 길 터주고 빨리 비켜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뮤지컬계 동료·후배들로 이뤄진 ‘박칼린의 친구들’은 그의 가족이자 든든한 동행자다. “질투심 없고 남과 자기를 비교하지 않는 이들”이라고 한다. 박칼린은 그들의 부모 집에 찾아가 “된장찌개 주세요” 할 정도로 허물없이 지낸다. 그가 전하는 생활의 단편은 인상적이다. 흙이 좋아 아파트에서는 못 살고 앞에는 염소, 뒤에는 닭 기르는 동네에서 지낸다. 그는 “전 욕심이 없다”며 “돈 많은 사람을 부러워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어릴 때 일찍 깨달았어요. 돈이나 명예가 이만큼이면 똑같거나 더 많은 불행과 고통이 따라와요. 그 자리 때문에 생기는 거죠. 저는 선두에 서는 것보다 두 번째 자리, 앞자리보다 구석에 있는 게 좋아요. 몇 천억년 후에 지구도 멸망할 텐데 지금 돌에 내 이름을 새겨봤자 아무 의미 없어요. 사는 동안 열심히 살면 돼요.”

뮤지컬계는 그가 20년이 훨씬 넘게 몸담았고, 아끼는 후배들이 활동할 무대다. 최근 뮤지컬 시장에는 지나친 상업화와 쏠림 현상, 수익성 저하 등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그러나 박칼린은 뮤지컬계의 미래를 밝게 본다. 그는 “뮤지컬 장르 자체가 우리 정서와 맞다”고 본다. 굿, 판소리, 마당극 모두 뮤지컬처럼 노래와 대사,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 마당놀이 형식이 한국인에게 새로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다. 

“앞으로 한국만의 뮤지컬이 자리 잡을 것 같아요. 지금은 아이가 성장통을 겪느라 엎치락뒤치락하는 단계죠. 여전히 아쉬운 점이라면 창작 뮤지컬의 발전이 더딘 거죠. 또 관객이 표를 사는 기준이 아쉬워요. 관객의 선택 기준이 제작자에게 영향을 미치니까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