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조치가 17일 해제되면서 중동에서 두 번째 큰 시장의 문이 다시 열렸다. 오일달러를 앞세운 이란이 경제 재건에 나서면 국내 기업에 많은 기회가 돌아올 전망이다. 다만, 이란이 원유 증산 대열에 나서면서 예상되는 저유가 사태 심화·지속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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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해제 소식이 알려진 17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정책국 외환제도과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관련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
사우디아라비아와 중동의 패권을 다투는 이란은 세계 1위 가스· 4위 석유자원 부국이다. 한국이 경제 제재에 동참하기 전까지 이란은 국내 건설업계의 해외건설 수주액 6위를 차지했다. 최근 국내 업체가 수주한 대형 플랜트 공사 수주는 2009년 GS건설이 따낸 사우스파 가스개발사업 6∼8단계 탈황 및 유황 회수설비 공사(13억9000만 달러)가 마지막이다. 대이란 무역 규모 역시 2011년 174억3000만달러에 달했으나 이후 급감해 2014년 87억4000만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결국 이란 경제제재 해제에 따른 기대가 가장 큰 곳도 건설·플랜트 업계다. 도로·철도·항만·댐 등 토목·건축 부문 인프라 시설 공사가 대거 발주되고 대대적인 원유시설 교체도 예상된다.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던 석유화학 업계도 경제성 높은 이란 원유를 싸게 들여와 제품 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그간 수주량 격감으로 고민해온 조선업계 역시 이란의 LNG·원유 수송선 대량 발주를 기대하고 있다. 코트라는 발주 물량이 총 90척 17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동차부품 업계도 수혜 업종이다. 이란은 1959년 자동차 산업을 본격 육성하기 시작해 중동 최대 자동차 생산국으로 도약한 상태였는데, 그간 경제 제재로 꽉 막혔던 자동차 생산·조립용 부품 수출의 물꼬가 다시 열릴 전망이다. 화장품, 신재생에너지, 정보통신업종도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트라가 최근 우리나라와 거래하는 이란 바이어 521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90%가 한국과 교역을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이란 원유 수출 확대에 따른 저유가 심화는 한국경제에 악영향이 우려된다. 2011년 하루 370만배럴을 생산하던 이란은 현재 280만배럴로 공급을 줄인 상태다. 이란은 제재 해제 즉시 50만배럴을 증산하고 50만배럴을 추가 증산한다고 공언해왔다. 저장탱크가 부족할 정도로 공급 과잉상태인 원유 가격이 다시 곤두박질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중동산 원유의 기준가인 두바이유의 지난해 평균 가격은 배럴당 50.69달러로 지난해 낙폭이 47.5%에 달한다. 1986년(-51%) 이후 29년 만에 가장 많이 떨어졌다. 이후 유가는 2000년에야 20달러대로 올라섰는데 올들어 다시 20달러 후반대에 진입한 상태다. 시장에선 최악의 경우 10달러대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일정 수준 저유가는 한국 경제에 물가를 낮추고 기업 비용은 줄이는 등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선순환 효과를 일으킨다. 하지만 낙폭이 지나치게 커지면 수출에 빨간불이 켜진다. 산유국과 주요 수출 시장인 신흥국이 악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동지역 국내 기업 건설 수주액은 52%나 급감했다. 해운·조선업도 큰 타격을 입었다. LG경제연구원 이근태 수석연구위원은 “신흥국 수요 위축으로 수출이 워낙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저유가는 신흥국에 더 큰 악재로 작용하는 만큼 한국 수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며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세계 금융·외환시장이 출렁일 가능성이 크다”고 경계했다.
박성준·나기천 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