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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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제재 가시화… 남·북·러 협력사업 '좌초 위기'

박 대통령 역점사업 ‘유라시아이니셔티브’ 차질 불가피
북한의 제4차 핵실험에 따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가 가시화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역점사업 중 하나인 유라시아이니셔티브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한양대 엄구호 아태지역연구센터 소장은 18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러시아의 대북 제재 가능성과 관련해 “(러시아가 대북 제재에 나서면) 남·북·러 협력사업의 경우 어느 정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남·북·러 협력사업은 그렇지 않아도 추진이 쉽지 않았는데 이번 핵실험으로 진전되기 더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남·북·러 3각 물류협력의 대표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 2차 시범운송의 일환으로 지난해 4월 북한 나진항에서 중국 국적 화물선이 러시아 유연탄 12만t을 싣고 우리 항구로 출항을 준비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미국의소리방송(VOA)은 러시아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북한의 제4차 핵실험으로 북·러 경협사업이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VOA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가 지원하는 독립국가연합연구소의 블라디미르 예브세에프 유라시아 통합과장은 최근 러시아 인터넷 매체 ‘폴리트콤’ 기고문에서 북한의 핵실험이 북·중관계뿐만 아니라 북·러관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남·북·러 협력사업 일환으로 추진 중인 나진·하산물류프로젝트도 1년 이상 모두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남·북·러 물류협력사업은 박 대통령의 국정지표인 유라시아이니셔티브의 핵심 프로젝트다. 유라시아이니셔티브란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묶고 북한 개방을 유도해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박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3년 11월 서울 정상회담에서 “나진·하산프로젝트가 원활히 추진되도록 장려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이후 포스코, 코레일, 현대상선 3사가 러시아 측과 사업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북·러 합작기업인 나선콘스트란스의 러시아 지분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참여한다는 내용이다.

나선콘스트란스의 지분 비율은 3(북한) 대 7(러시아)이다. 러시아가 보유한 지분의 49%를 매입함으로써 우리는 전체 지분의 34.3%를 갖는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남·북·러의 지분은 러시아(35.7%), 한국(34.3%), 북한(30%) 순이 된다. 나진·하산프로젝트란 석탄 등 러시아산 물류를 하산·나진 간 철도를 이용해 나진항으로 수송한 뒤 중국 화물선에 실어 국내 항구로 들여오는 사업이다. 한·러 본계약은 오는 3월쯤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 정부는 나진·하산프로젝트를 5·24 대북 제재조치의 예외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북한의 제4차 핵실험으로 전체 판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북한의 핵실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논의와 관련해 “지금처럼 남북 긴장관계가 계속되고, 유엔 등이 북한 제재에 나선다면 나진·하산프로젝트도 당연히 보류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러 관계 전문가는 “북한의 제4차 핵실험에 따라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에 나설 경우 박 대통령의 대외정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며 “러시아에 대한 대북 제재 요구와 박 대통령의 대외정책 사이에 모순이 분명해 큰 고민일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대외선전용 주간지 통일신보가 16일자 2면에 1953년 정전협정 문건에 서명하는 김일성 주석(왼쪽 사진)과 4차 핵실험 최종 명령서에 서명하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사진을 함께 실었다. 두 사람의 닮은 점을 부각시켜 세습의 정당성을 선전하고 이번 핵실험이 50여년 전처럼 미국에 대한 승리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연합뉴스
한편 북핵 6자회담 우리 수석대표인 황준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 한·러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을 갖는다. 같은 날 오전 토니 블링큰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1박2일 일정으로 방한해 정부 당국자들과 북한의 4차 핵실험을 포함한 동북아 현안을 논의한다.

김청중·나기천·염유섭 기자 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