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준 한국배구연맹(KOVO) 총재가 15일 서울 상암동 집무실에서 이번 시즌 처음으로 도입된 여자배구 트라이아웃제에 대한 평가와 함께 프로배구가 나아가야 할 청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
“배구계 안팎에서 경기력에 대한 우려를 표했고, 실제로도 시즌 초반엔 일부 외국인 선수들이 팀에 녹아들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4라운드까지 치른 현재 외국인 선수들은 에이스로서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로 인해 각 구단들은 특정 외국인 선수에만 의존하는 단조로운 경기운영에서 벗어나 빠르고 조직적인 배구를 고민하게 됐고, 국내 선수 활용이 순위 싸움에서 가장 큰 변수가 되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내년 시즌부터는 남자부도 트라이아웃 제도를 시행하게 된다. 시몬이나 그로저, 오레올, 모로즈 등 세계적인 외국인 선수들에 눈높이가 맞춰진 팬들을 만족시킬 만한 방안이 있나.
“시몬이나 그로저, 오레올 등이 축구로 치면 메시나 호날두 급의 스타다. 야구나 농구 등 다른 프로 종목을 보면 그 정도 이름값의 선수가 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세계적인 선수들의 기량을 직접 경험한 게 팬들에게 좋은 일이긴 하지만, 구단 간 과도한 경쟁과 몸값 폭등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현 외국인선수 제도를 무작정 내버려둘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리고 현재 세계배구 시장을 보면 우리가 추진 중인 30만달러라는 몸값이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다. 그간 V-리그만 오면 두 배 이상의 연봉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었다. 물론 지금만큼의 세계정상급 선수가 트라이아웃에 참가할 가능성은 떨어지지만, 해외에서 충분히 기량을 인정받는 선수들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 V-리그의 캐치프레이즈가 ‘버라이어티 리그(Variety League)’다. 앞으로 V-리그는 특정 선수에 의존하는 경기에서 탈피하고 다양한 스토리와 마케팅을 더 많은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저유가, 경기 침체 등 모기업 경영 악화로 기업의 스포츠단 운영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기업의 무조건적인 투자를 이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투자에 대한 명분과 그 효과가 분명해야 투자 동기가 생길 것이다. 이를 위해 KOVO는 미래의 배구팬 창출 및 유망주 발굴을 위해 현재 4년차에 접어드는 유소년배구 교실을 계속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40개교 9000여명의 초등학생이 정규수업 시간에 하는 유소년 배구교실을 통해 배구를 배우고 있다. 앞으로 50개교 1만2000명 이상의 학생이 배구를 즐길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궁극적으로 유소년 배구교실을 각 구단의 클럽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는 지원책도 준비 중이다. 엘리트 육성 차원에서도 신인선수 선발 시 우선지명권 제도 도입을 통해 각 구단이 연고지 내 배구팀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투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예정이다.”
-유소년 육성사업은 대한배구협회와 함께해야 하고 재정적 뒷받침, 제도 등 KOVO 홀로 하기엔 어려운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개선점과 앞으로 나아갈 길은 어떤 것들이 있나.
“유소년 배구 발전기금은 크게 3가지 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각 구단들의 드래프트 지원금과 문체부에서 지원하는 체육진흥투표권 주최 단체 지원금, 연맹과 구단의 유소년 육성기금이 그것이다. 드래프트 지원금이 매년 20억원 정도 된다. 그런데 오히려 유소년 배구는 퇴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고교 실정을 보면 남자 27개, 여자 17개로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지원금의 비효율적 집행을 뜻한다. 재정적인 지원만 하는 게 아니라 모니터링 시스템 도입 등 개선 방향을 마련해야 투명한 투자가 가능해지고 건강한 인프라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연고지 우선지명권 제도 도입을 통해 구단들이 연고지 내 유소년 배구 육성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다. 대한배구협회와도 많은 대화를 통해 유소년 배구 육성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아직은 구단들이 연고지에 완전히 정착한 모습은 아니다. 대부분 구단들이 수도권에 숙소와 훈련장을 두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현대캐피탈이나 KGC인삼공사, 도로공사가 연고지역에 숙소와 훈련장을 짓고 잘 정착하고 있다. 최근 대한항공이나 우리카드도 연고지 정착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프로배구단이 없는 도시에서의 팬들 요청은 KOVO컵 대회를 통해 해소하고 있다. 기존 구단의 연고 이동은 연고 정착에 있어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그 부분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부산이나 광주 등 지방 대도시에서 새 구단이 창단된다면 V-리그 전국화도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프로농구와 프로배구는 ‘겨울 스포츠 맹주’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형국이다. 시청률이나 중계권료 등의 부분에선 프로배구가 앞서는 것은 사실이지만, 연고지 현황을 보면 대도시를 점하고 있는 농구에 비해 중소도시 위주로 하고 있는 배구가 관중몰이에선 아쉬운 게 사실인데.
“프로농구에 비해 8년이나 늦게 프로화를 추진한 프로배구는 출범 당시 타 종목과의 연고지 중복을 피하기 위해 중소도시를 전략적으로 연고지로 운영해 왔고, 이 중 천안이나 안산은 배구도시로서 시민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팬들에게는 배구보다 농구가 훨씬 가까운 스포츠다. 하지만 지난 몇 시즌 동안 시청률이나 관중 증가를 앞세워 팬들과의 친밀도가 급상승했다. 각 구단들도 다양한 마케팅과 봉사활동 등을 통해 연고지에 정착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이룬다면 빠른 시일 내에 저희 프로배구도 겨울스포츠에서 프로농구와 대등한 경쟁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10월에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하기 위한 미래비전 ‘파워풀 콤비네이션(POWERFUL COMBINATION) 25’를 발표하면서 앞으로 10년 동안 남녀 구단의 증가와 세계랭킹 상승, 유소년 증가, 관중 수 증가, 사업 수입 증가 등 5가지 목표를 정해 업무에 매진해 왔다. 앞으로 임기가 1년6개월 정도 남았는데, 남자부는 임기 내에 8구단의 창단소식을 전해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OK저축은행이 제7구단으로 창단할 때 이민규-송명근-송희채 등 ‘경기대 3인방’이 있었기에 빠르게 창단작업이 완료될 수 있었다. 최근 경제사정 악화로 기업들이 어렵지만, 대어급 선수들이 여럿이 동시에 나오는 해가 있다면 창단하겠다고 달려들 구단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다만 여자부는 새 구단 창단보다는 유망선수의 수급을 위한 유소년 인프라 구축이 더 선결되어야 할 문제다.”
대담=최현태 체육부장 , 정리=남정훈 기자, 사진=서상배 선임기자 che@segye.com
■생년월일 :1950년 경남 진양 출생
■학력사항 : 1968년 경기고 졸업, 1970년 미국 캔자스주립대·미주리주립대 수료, 1974년 한양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2011년 한양대학교 명예 경영학박사
■경력사항:●LG정밀 부사장(1994∼1999년) ●LG화재 부사장(1999∼2000년)●럭키생명 대표이사(2000∼2002년) ●LG화재 대표이사(2002∼2005년) ●LIG손해보험 대표이사·부회장(2005∼2008년), 회장(2009년∼2013년 6월) ●한국배구연맹(KOVO) 총재(2012년 11월 23일∼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