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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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학습·생활지도 'OK'… 120만원대 고시원 등장

서울 노량진·교대역 학원가 고액 ‘기숙학원’ 성업
#1. 20일 서울 노량진의 학원가. 골목마다 다양한 이름의 고시학원이 즐비한 이곳에 최근 건물 2∼6층을 쓰는 ‘기숙학원’이 생겨났다.

기존 고시원에 학원 기능을 결합한 형태의 이 기숙학원은 일반 고시원과 달리 매끼 식사와 각종 생활지도 서비스를 한꺼번에 제공하고 있다. 그만큼 비용이 비싸다. 이 기숙학원의 한달 비용은 120만원에 달하지만 고시생들 사이에선 인기다.

석모(24)씨는 “고시원에서 휴대전화 사용까지 통제하는 등 개인 생활지도를 철저히 한다”며 “의지가 약한 편이라 관리를 받는 것이 좋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최근 서울 노량진에 고시원과 연계된 100만원이 넘는 고액 기숙학원이 등장한 가운데 20일 한 수험생이 기숙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2. 재수학원이 밀집한 서울 지하철 2호선 교대역 인근.

방마다 3.3m²(1평) 남짓한 공간에 침대와 책상이 전부인 재수생 전문 고시원인 ‘학사’가 성업 중이다. 아침 점호부터 야간 출입통제까지 밀착 생활지도를 해주는 이 학사들은 재수생의 수요가 많아 한달 이용료가 보통 60만∼90만원이다. 최근에는 공용 독서실과 컴퓨터 이용실 등을 갖춘 월 130만원짜리 ‘프리미엄 학사’도 등장했다. 재수생 박모(22·여)씨는 “가격이 비싼 것도 사실이지만 재수 생활을 빨리 접으려고 선택했다”고 말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안의 고시생이나 재수생을 대상으로 숙식을 제공하고 학습·생활 지도까지 해주는 고액 고시원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고시원은 ‘가난한 1인 가구’ 보금자리의 대명사인 일반 고시원과는 이용료부터 비교가 안 된다. 고시원마저 부모의 재력에 따라 결정되는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재수생 자녀가 지낼 숙소를 알아보려고 교대 인근의 한 학사를 찾은 이모(56)씨는 “한달에 130만원이란 가격이 부담되긴 한데 공부에 전념하려면 여기보다 나은 곳이 없는 것 같다”며 ‘생활지도를 확실하게 해준다’는 학사 측 설명을 크게 반겼다. 개인 공간은 1평 정도에 불과하고 공용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노량진 기숙학원도 이용료가 월 120만원이나 되지만 빈방이 거의 없다.

실제 이용자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교대 인근 학사에 거주하는 김모(27)씨는 “일반 고시원에는 고시생이 아닌 사람들까지 섞여 있어 시끄럽고 집중이 안 된다”며 “이곳에서는 ‘나만 고생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위안까지 받게 된다”고 말했다.

고액 고시원의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해 수능이 평년보다 어려워 재수생이 늘어날 전망인 데다 취업난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 수요층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 고시·재수생들에게 ‘그림의 떡’이다. 부모의 도움 없이는 매달 100만원 안팎의 이용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경근 고려대 교수(교육학)는 “서울 강남구의 전체 학생수 대비 재수생은 75%에 달하지만 금천구는 23% 수준으로, 재수 공부마저 계층에 따라 의미가 다른 상황”이라며 “한국사회를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라고 하는데 고소득층에게 (패자부활)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진다”고 지적했다.

14일 오후 서울 노량진 학원가 앞에서 원생들이 오뎅을 먹고 있다.
이재문기자
권구성, 김주영, 남혜정 기자 kusu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