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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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보호 무심한 은행 콜센터…비밀번호 4자리 수 요구

간단한 대출·예금 잔액 조회 시에도 4자리 전부 눌러야
은행, “ARS 비밀번호는 보안 완벽”…고객은 불안, “내 비밀번호 유출되면 어찌하나?”

카드사 콜센터들이 카드 사용액 조회 등마다 일일이 비밀번호 4자리 수를 요구해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은행 콜센터도 마찬가지 행태를 보이는 것으로 드러나 빈축을 사고 있다.

현재 은행 콜센터들은 금융거래는 물론 대출이나 예금 잔액 등 간단한 조회에도 비밀번호 4자리를 전부 누를 것을 요구한다. 때문에 “내 비밀번호가 유출되면, 불측의 피해를 입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고객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KB국민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있는 A씨는 바쁜 와중에 짬을 내 국민은행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대출금 잔액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주민번호 앞 6자리와 대출 원리금이 빠져 나가는 계좌의 비밀번호 4자리를 모두 눌러야 했다.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에 모두 계좌를 가지고 있는 B씨는 자신의 예금 잔액을 확인하고 싶어 두 은행 콜센터를 찾았다. B씨는 원하는 정보를 얻었지만, 이를 위해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4자리를 전부 눌러야 했기에 찜찜한 ‘뒷맛’을 남겼다.

이런 행태는 우리은행, NH농협은행, 기업은행,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씨티은행 등 모든 은행들이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고객들은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A씨는 “혹시 비밀번호가 유출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내 체크카드를 누가 복제해간 뒤 계좌 비밀번호 4자리만 알아내도 자동입출금기(ATM)에서 얼마든지 돈을 빼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은행 측에서는 아무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동응답(ARS)나 상담원과의 통화에서 전화기 버튼으로 누르는 비밀번호는 보안이 완벽하다”며 “결코 밖으로 새나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은행의 자신감에도 고객들의 불안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재작년 1억 건이 넘는 개인정보가 한꺼번에 유출된 ‘카드사 정보유출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신용정보법이 개정되고, 한국신용정보원이 출범하는 등 사회가 개인정보보호에 한껏 민감해진 상태다. 특히 당시 정보를 유출한 사람이 은행들이 출자해 만든 코리아크레딧뷰로(KCB) 직원이란 점이 불안감을 더 부추긴다.

그런 탓에 “은행들이 고객 개인정보보호에 무심하다”, “개인정보 유출에 민감한 고객들을 더 배려해야 한다” 등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B씨는 “대출, 예금 등의 조회에서 주민번호 앞 6자리나 계좌번호를 입력한다”며 “거기까지 확인됐으면, 비밀번호는 앞 2자리만 눌러도 충분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그는 “굳이 비밀번호 4자리를 전부 확인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의문을 표했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세계파이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