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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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성공해도 환자 죽을 수 있어”… 직권상정 요건 완화 거절

정의화 의장 ‘선진화법 개정안 처리’ 친정 요구에 부정적
“뇌수술을 할 때, 수술에 성공함에도 환자가 돌아가시는 경우가 있다.”

신경외과 의사 출신인 정의화 국회의장은 21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쟁점법안 처리를 위해 국회선진화법(국회법) 내 직권상정 요건 완화 개정안을 처리해 달라는 ‘친정’ 새누리당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국회선진화법이 문제가 많은 데다 식물국회를 불렀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절차를 밟지 않고 개정안을 처리하는 등 ‘메스’를 함부로 휘둘렀다가는 의회민주주의라는 ‘환자’가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21일 오후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국회선진화법 개정 등 각종 현안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 의장은 여당의 국회선진화법 개정 움직임과 관련해 “국회 의사결정은 법 테두리 내에서 해야 하며 직권상정은 못 한다”고 못박았다.
이재문 기자
◆정 의장 “직권상정은 예외적 규정” 반대

정 의장은 직권상정 완화가 이뤄지면 집권여당이 쟁점법안마다 합의보다는 직권상정이라는 쉽고 편한 길에만 의지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변칙에만 몰두하게 되면 향후 국회 운영에 악영향만 끼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평소 강조해 온 ‘상임위 중심주의’가 무력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있다. 정 의장은 “의장의 직권상정은 국회의 정상적인 심의절차에 대한 예외 규정으로서 그 요건은 매우 엄격하게 규정되고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장이 새누리당이 요청하는 단독 본회의 개의 요구를 반대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정 의장은 “선진화법 개정은 ‘국회 운영에 관한 룰’을 바꾸는 것으로 여야의 충분한 협의가 필수적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질의응답에서는 “단독국회를 하면 단독상정을 할 것이고 그러면 수정안이 나올 것”이라며 “그 과정에 선하게 보인다”고 꼬집었다.

새누리당이 직권상정을 거듭 요청하는 것에 대한 정 의장의 불편한 심정은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재연됐다. 정 의장은 “여당 출신 국회의장으로서 인간적으로 어찌 곤혹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면서도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지키는 국회의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입법부 수장이 불법임을 잘 알면서도 위법한 행동을 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 의장 ‘소신’두고 평가 엇갈려

정 의장의 행보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의회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소신 행보라는 긍정적 평가가 나오지만, 동시에 정 의장이 퇴임 후 대권 도전 등 또 다른 정치적 행보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부산 중·동구에서 내리 5선을 지낸 정 의장이 20대 총선에서 광주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정 의장은 이날 출근길에서 “(광주 출마설은) 코미디다. 아직까지는”이라며 “나는 지금 빨리 떠나고 싶다”고 했다.

정 의장은 이날 회견에서 “오늘부터 비상한 각오로 임하겠다”며 설 연휴 이전에 선거구획정과 쟁점법안 협상 타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했다. 그는 회견 후 곧바로 여야 원내지도부를 불러 협상에 임했다. 혐상 후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의장님의 중재노력에 대해서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한편 정 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관제 서명 논란과 관련해 “박 대통령도 정말 울고 싶은 심정 일 것이다. 나라 경제가 점차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높은 파고가 덮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며 “저도 중책을 맡은 사람으로 박 대통령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가능한 박 대통령의 행동에 대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도형 기자 scop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