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민심 르포> "文당, 安당 누굴 찍을까"…광주·전남 '낯선 관망'

"누가 실축 덜하나"…이례적 양강구도 '승부차기' 비유
"호남 정서에 들어맞는 정당, 찍을 정당 없어" 비판도
"기자 양반은 누구 찍으실라요?"

광주 서구 양동시장에서 장을 보던 김희순(47·여) 씨는 4월 총선에서 지지 정당을 묻자 이렇게 되물었다.

뜻밖에 되돌아온 질문에 기자가 망설이는 사이 김씨는 "'문(문재인)당'을 뽑아야 할란가, '안(안철수)당'을 뽑아야 할란가 모르겠다"고 되뇌었다.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모처럼 야권 양강구도가 형성됐다.

'옷색깔'이 선거결과를 사실상 좌우하던 더불어민주당 독식 체제에서 국민의당의 등장으로 무게중심이 나뉜 것이다.

더민주 문재인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의 대선 전초전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 총선 출마예정자는 "잠재적 대선후보들의 대권 쟁취 가능성, 안정감 등이 더민주와 국민의당 사이 총선 승부를 가르는 최우선 기준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광주·전남을 집어삼킬 듯 했던 국민의당 지지세는 한상진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의 '이승만 국부' 발언 등으로 한풀 꺾이고 더민주는 문 대표의 사퇴 의사 표명과 인재영입 등으로 반등세를 맞는 형국이다.

'단념' 직전까지 갔던 더민주에 대한 시선이 다시 돌아보는 수준으로 호전되면서 지역 민심이 두 정당을 나란히 저울에 올려놓고 본격적인 평가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예측을 불허하는 경쟁구도는 역설적으로 가장 많은 지지율을 나눠 가진 양당 어느 쪽도 지역 민심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지역 총선은 역대 사례에서 보듯 한 쪽의 일방적인 우세로 끝나는 '바람 선거'가 될 것이라는 전망과 유례없는 인물 대결이 될 것이라는 반론이 팽팽하다. 

한 예비후보는 "실축을 누가 적게 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리는 축구의 승부차기 같은 정국"이라며 "총선까지 남은 기간 실수를 적게 하는 정당이 호남 맹주로 올라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학생 이정훈(23)씨는 "더민주는 문 대표 사퇴 카드로 분위기 쇄신에 나섰지만 이른바 친노패권과 결별해 흐름을 이어갈수 있을지 확신이 안서고 김종인 선대위원장의 국보위 참여 경력도 광주 유권자 입장에서는 거슬린다"며 "국민의당은 한상진 창당위원장의 발언에서 읽히듯 '우클릭' 성향이 강한 것 같아 호남 정서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총선 때까지 두 정당을 관망하면서 지역구 후보들의 자질을 따져보고 투표하겠다고 이씨는 말했다.

양측의 지역 민심을 거스르는 행보에 무당층이나 투표 포기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벌써부터 나온다.

국민의당 바람이 불자 줄탈당을 결행하고, 더민주 지지세 상승 이후 탈당에서 잔류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현역 의원들의 행보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피로감을 키워 선거 무관심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전남대 오승용 교수는 "더민주나 국민의당이나 정책을 통한 선명성 경쟁이 아닌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어 '똥묻은 개가 누구냐, 겨묻은 개가 누구냐' 다투는 것 같다"며 "경쟁이 관심이나 참여를 이끌 수 있지만 질낮은 경쟁은 경우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더민주는 문 대표 사퇴 후에도 공천이나 경선룰 적용 과정에서 친노패권을 확실히 정리하고, 국민의당은 대선용이 아닌 총선에 맞는 선거전략을 세우고 호남과 수도권에서 승리하려면 해당 지역의 선호에 맞는 노선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더민주 또는 국민의당과의 통합이 예상되는 천정배 의원 측 국민회의, 상호 통합에 합의한 박주선 의원 측 통합신당, 박준영 전 전남지사 측 신민당, 김민석 전 의원 측 민주당 등 신당 세력들의 행보도 관심을 끈다.

각자 행보로는 판세를 좌우하기 어렵겠지만 통합으로 세와 몸집을 불린다면 선거 영향력도 커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정의당 등 이른바 진보진영, 무소속 후보들은 양자 경쟁 탓으로 관심에서 더 멀어져 적어도 이 지역에서는 야권분열의 혜택을 누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무소속으로 출마예정인 한 예비 후보는 "예전 광주·전남의 총선은 '깃발만 꽂으면 된다'는 식의 '묻지마 투표'일때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유권자들이 후보 개인, 정치세력의 본모습을 냉정하게 보는 선거가 될 것"이라며 "현장을 돌다 보면 찍을 정당이 없다는 분들도 많은 만큼 민심의 가려운 부분을 긁는다면 다른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에게도 충분한 기회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