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출신 '변신의 귀재'들이 연초 극장가에 떴다. 영국 출신 톰 하디와 에디 레드메인, 그리고 독일 출신 마이클 패스벤더의 얘기다.
이들은 새해 벽두부터 강렬한 캐릭터 변신으로 영화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톰 하디는 박스오피스 돌풍을 몰고 온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감독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에서 주인공 휴 글래스(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고 아들까지 살해하는 '존 피츠제럴드'로 분했다.
에디 레디메인 역시 파격적인 변신을 감행했다. 그는 오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대니쉬 걸'에서 세계 최초 트렌스젠더 역을 맡아 세계 영화팬들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지난 21일 개봉한 '스티브 잡스'(감독 대니 보일)에서 동명 타이틀롤을 연기해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연기파 배우들의 이미지 변신을 지켜보는 일은 늘 즐겁다. 이들 배우들은 모두 '꽃미남'이라던가, 처음부터 '주연급'은 아니었지만 오랜 세월 다양한 작품에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오며 세계 영화팬들의 신뢰를 쌓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른바 '할리우드의 믿고 보는 배우'들인 셈이다.
톰 하디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페르소나'로 유명해진 배우다. '인셉션'(2010)과 '다크나이트 라이즈'(2012)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선 악당 '베인'으로 분해 고(故) 히스 레저(조커 역)의 빈 자리를 메웠다. 영국 비밀 정보부(MI6)의 스파이를 캐내는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2)나 지난 해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전혀 다른 캐릭터 연기를 선보였다. 지난 연말 개봉한 '레전드'에서는 주인공 크레이 형제를 동시에 연기, '전무후무한 1인 2역 연기'를 선보여 감탄을 자아냈다.
지난 14일 개봉한 '레버넌트'는 톰 하디의 악당 연기를 제대로 감상할 기회다. 이 작품에서 하디는 지금까지 선보인 적 없는 극악무도하고 비열한 악역을 소화했다. 덮수룩한 수염과 불만스러운 표정의 비주얼은 물론, 당시 시대의 억양과 악센트를 완벽히 살린 발성과 비아냥거리는 말투가 19세기 모피사냥꾼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는 평이다.
이에 디캐프리오는 "톰 하디는 매우 역동적인 배우다. 존 피츠제럴드 캐릭터를 창조하며 몰입하는 그를 지켜보는 일은 매우 흥미진진했다"고 말했다.
에디 레드메인은 2012년 개봉한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감독 톰 후퍼)에서 코제트(아만다 사이프리드)와 사랑에 빠지는 마리우스를 연기해 국내 관객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배우. 개봉을 앞둔 '대니쉬 걸'은 그가 톰 후퍼 감독과 또 한 번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레드메인의 변신은 가히 파격적이다. 레드메인은 '세계 최초의 트랜스젠더'로 불리는 에이나르 베게너로 분해, 그가 1920년대 덴마크의 풍경화가로 이름을 날린 '릴리 일베'로 거듭나는 과정을 진정성 있는 연기로 그려냈다.
레드메인은 잉글랜드의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최고급 사립학교인 이튼칼리지를 졸업했다. 윌리엄 왕세손이 그와 동창으로 알려져 더욱 화제가 됐다. 2002년 연극 '십이야'에 출연하며 본격적인 배우의 길로 접어든 그는 '라이크 마인드'(2006)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이후 로버트 드 니로 감독의 '굿 셰퍼트'(2007)에서 맷 데이먼과 앤절리나 졸리의 아들을 연기해 주목 받았다. 이후 '천일의 스캔들' '세비지 그레이스' 등에 출연하며 인기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마이클 패스벤더 역시 관객들의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배우다. 1977년생인 그는 2001년 HBO 인기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로 데뷔, 16년간 '300'(2006),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 '제인에어'(2011), '엑스맨 퍼스트클래스'(2011), '셰임'(2011), '프로메테우스'(2012), '노예 12년'(2013),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 '멕베스'(2015) 등 수많은 작품에서 열연했다.
영화 '스티브 잡스'는 세상을 바꾼 3번의 프레젠테이션과 그 이면에 펼쳐지는 숨 막히는 열기와 천재의 열정과 광기를 담아낸 영화. 애플사의 전 CEO인 고(故) 스티브 잡스로 분한 그는 캐릭터를 향한 철저한 몰입과 준비를 통해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 완고하고 냉철한 성격부터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면까지 양면성을 모두 보여줬다. 페스벤더는 실존인물인 잡스를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했다고 털어놨다.
대니 보일 감독은 "그에게는 매일같이 외워야 하는 수많은 대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페스벤더는 '암기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듯이 대본을 통째로 흡수해 버렸다"라며 그의 완벽함에 혀를 내둘렀다는 후문이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