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익숙한 대법원의 재판 광경이다. 이 무대의 주연은 대법관이다. ‘최고 심판자’로서 권위와 능력에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존재이다. 미국에서는 대법관을 ‘지혜의 기둥’이라고 칭송하기도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빛나는 주연 뒤엔 든든한 조연들이 있듯이, 대법관도 뒤를 받쳐주는 ‘재판연구관’이 있기에 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다.
재판연구관은 법원조직법 제24조에 따라 ‘대법원장의 명을 받아 대법원에서 사건의 심리 및 재판에 관한 조사, 연구 업무를 담당’하는 판사들이다.
대법관의 현명한 판단을 위해 곁에서 묵묵히 돕는 업무 특성상 ‘고스트 라이터’(유령작가), ‘가케무샤’(그림자 무사)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해 9월 기준 대법원 재판연구관은 118명(판사 108명·전문직 10명)이다.
이들은 대법원에 올라오는 사건 기록을 먼저 검토하고 심층분석 등을 거쳐 대법관에게 보고서를 제출하는 막중한 일을 담당한다. 이들이 내린 잠정 결론을 바탕으로 대법관이 판결을 하고 때로는 판결문 초안을 작성하기도 한다. 업무 강도가 매우 센 이유다. 그럼에도 재판연구관 경력은 ‘판사 동기 중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보증수표여서 이들에겐 선망의 대상이다.
나중에 변호사로 나설 때도 최고법원 근무 경력은 몸값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일각에서는 재판연구관 제도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재판연구관이 사실상 대법원을 주도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 등 사법 선진국 역시 재판연구관 제도를 두고 있다”며 “우수인력 양성과 판결의 질적 향상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법관 1인당 연간 3000여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우리 대법원은 사정상 재판연구관의 중요성이 클 수밖에 없다.
정선형 기자 linea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