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만 되면 북적대던 여의도 ‘인간시장’이 썰렁해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요 원인은 정치권 기피 현상이라고 본다. 각 분야에서 성취를 일군 강호의 인재들이 정계에 뛰어들곤 했다. 그들은 정치를 발전시키는 자양분이 되고 원동력이 됐다. 지금은 다르다. 대부분은 유권자의 눈과 귀를 현혹하는 포장지 역할에 그친다. 진작 끝냈어야 할 패권정치 구태정치를 연명시키는 신기술로 둔갑하기도 하고 첨단장치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들의 이상과 비전은 정치권의 블랙홀로 흡수되고 만다. ‘백마 타고 온 초인’이 아니라면 결국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고백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으려면 수십년 기득권 체제와 맞서 싸우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무장한 채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
김기홍 논설실장 |
그렇다면 국민의 대표를 선택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흔히들 인물과 정책을 말하지만 이제부터는 인물을 보고 선택하라고 말하면 안 된다. 우리 정치가 안고 있는 문제는 인물이 아니라 시스템이고 정책이다.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게 하고 제도를 바꾸는 선택을 해야 한다. 지역이나 여야에 대한 맹목적인 호불호 감정만으로 표를 던져서는 안 된다. 유권자는 지금보다 더 현실적이고 계산적이어야 한다. 국회의원 세비, 정당 국고보조금에 쏟아붓는 엄청난 혈세 생각도 해야 한다.
19대 국회를 최악의 국회라고 부른다. 국회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지경이 됐다는 뜻이다. 이에 동의한다면 정치 수요자인 국민 입장에서 작금의 정치를 신줏단지같이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
캐나다의 40대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 변화’를 외치며 1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뤘다. 스페인 두 신생 정당의 30대 당수들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30년 양당 체제를 끝냈다. 그들은 그 나라 국민이 용기와 신념, 의지로 만들어낸 영웅이고 미래 청사진이다. 앞날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주는 지도자, 그런 지도자를 갖게 된 캐나다 스페인 국민이 부러운가?
한국 정치는 활화산이다. 휴지기를 끝내고 분출기로 접어들었다. 정치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증거다. 정치권 저 깊은 곳에서 정치판의 지각 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 강력한 지진 활동이 시작됐다. 야권의 분열과 합종연횡, 여권의 친박·비박의 충돌과 친박·진박의 분화, 정치에 대한 국민의 깊은 불신과 분노가 그 징표다. 뜨거운 용암과 화산재가 힘차게 솟구쳐 구정치를 덮어버리고 굳은 용암과 화산재 위에서 새정치의 싹이 돋게 해야 한다.
이정표 없는 낯선 길을 가는 막연함 같은 불확실성으론 그런 장관(壯觀)을 맞을 수 없다. 주권자의 힘으로 유권자가 이기는 선택을 해야 가능하다. 불안하고 두렵더라도 충분히 모험을 걸어볼 만한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는 국민적 확신이 필요하다.
김기홍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