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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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로는 빛 못봤지만 멋진 지도자 될래요”

[이야기가 있는 스포츠] 프로축구 유일의 골키퍼 출신 제주 박동우 수석코치
29일 중국 광저우 칭위안헝다호텔 축구장. 프로축구 제주 유나이티드의 전지훈련 장소인 이곳에서는 선수들의 전술훈련이 한참이다. 선수들 사이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함께 뛰는 박동우(46) 수석코치는 골키퍼 출신이다. 국내 프로축구에서 골키퍼 출신이 수석코치를 맡고 있는 유일한 케이스다. 박 코치는 골키퍼 출신들이 대부분 골키퍼 코치에서 사라져가는 벽을 뛰어넘은 셈이다.

박 코치는 수석이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불과 지난 연말까지도 스카우터와 골키퍼 코치를 겸했다. 제주에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해 오는 스카우터 자리를 무려 7년간 맡았다. 국내 프로축구에서 전력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외국인 선수를 제주가 잘 뽑아오기로 유명한 것도 박 코치의 역량 덕분이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박 코치를 ‘최코(최고의 코치)’라고 부른다. 자일(은퇴), 산토스(수원 삼성), 페드로(빗셀 고베), 로페스(전북 현대) 등이 근래 제주를 거쳐간 외국인 선수들이다. 올 시즌에도 브라질 출신의 모이세스, 마르셀로 등 2명을 영입했다. 

29일 프로축구 제주 유나이티드의 전지훈련 장소인 중국 광저우 칭위안헝다호텔 축구장에서 박동우 수석코치가 선수들에게 전술을 설명하고 있다.
광저우=박병헌 선임기자
이 두 명도 과거 선수들처럼 브라질 3부리그 출신이다. 1, 2부리그의 선수만 해도 몸값을 감당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3, 4부에서 선수영입을 한다. 하부리그에서 좋은 선수 한 명을 영입하기 위해 박 코치는 매년 한두 차례 비행기를 30시간 이상 타고 브라질로 떠난다. 브라질 현지에서도 보통 20일 이상 촌구석을 누비곤 한다. 얼마 전 중앙 수비수이던 호주 출신의 알렉스가 중국 슈퍼리그 텐진 테다로 돌연 이적하는 바람에 박 코치는 대체요원을 뽑기 위해 조만간 ‘진흙 속에서 진주’를 찾으러 떠나야 할 판이다. 박 코치는 당분간 스카우터를 계속 맡아야 하기 때문에 1인3역의 멀티플레이어인 셈이다.

박 코치는 “외국인 선수들을 데려올 때 경기력도 중요하지만 국내 선수들과의 융화와 콤비를 위해 인성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인성은 눈에 보이질 않아 무척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박 코치는 외국인 선수들의 인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반드시 선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를 한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구단도 외국인 선수들에게 한 울타리 안에 사택을 제공하고 가족처럼 대우해 주며, 과거 팀 동료이던 사령탑 조성환 감독의 선수들에 대한 배려가 각별하기에 융화가 잘 된다”고 소개했다.

1995년 일화를 통해 프로에 데뷔한 그는 제주의 전신인 부천 SK, 전남 드래곤즈를 거쳐 6시즌 만에 은퇴의 길로 들어섰다. 91경기에 출장해 130골을 실점했고, 태극마크도 한 번 달아보지 못했다. 국내 프로축구에서 골키퍼 출신이 수석코치를 맡은 것은 10년 만이다. 그는 “주어진 역할에 늘 충실하려고 했을 뿐이다. 동갑인 조 감독의 도움이 컸다”며 “내가 더욱 열심히 하면 후배 골키퍼들에게도 보다 많은 길이 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구 영도초등학교 5학년 때 공부하기가 싫어서 축구를 시작하자마자 골키퍼를 맡았다는 박 코치는 “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골키퍼 출신이 설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다. 하지만 늘 맨 뒤에서 경기를 지켜보기 때문에 흐름을 잘 읽어 유리한 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전북 현대와 20세 이하 대표팀 코치를 지낸 박 코치는 K리그 클래식 구단 가운데 제주가 팀 분위기 1등이라고 자신했다. 박 코치는 “이런 분위기가 그라운드에서 그대로 표출돼 올 시즌에 정말 좋은 성적을 내도록 하겠다”며 “팀의 모든 선수를 지도 관리하는 지도자는 선수 때보다 몇십배 힘든 자리다. 선수로서는 크게 이름을 못 날렸지만 멋진 지도자가 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광저우=박병헌 선임기자 bonanza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