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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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의지 다지는 공정위… 재벌 개혁 속도내나

2016년 업무보고… '대기업 담합' 근절 총력
해외계열사 현황 공시 의무화
일감 몰아주기도 제재 본격화
담합 가담자 '사내 제재' 추진
"부당이득, 과징금보다 많아"
짬짜미 대책 실효성 논란도
“(야당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해)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하니 이제 (경제민주화) 모자를 다시 씌워야 하는 상황이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8일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1년 전 간담회에서 “경제민주화라는 ‘모자’를 쓰고 조사를 하면 큰 도움이 안 될 경우가 많다”고 말할 때와는 뉘앙스가 확연히 달랐다. 정 위원장은 간담회 모두 발언을 대부분 경제민주화에 할애하며 강도 높은 재벌개혁에 나설 뜻을 밝혔다. 그는 또 이순신장군이 옥포해전 출전 때 전라 좌수군들에 말했던 ‘물령망동 정중여산(勿令妄動 靜重如山: 가벼이 움직이지 말고 태산처럼 무겁게 행동하라)’을 인용하기도 했다. 잔뜩 움츠러들었던 ‘경제검찰’ 공정위의 향후 행보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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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쓴 경제민주화 ‘모자’

31일 공정위가 발표한 ‘2016년 업무계획’의 주요 내용에는 재벌 개혁 이슈들이 대거 전면에 등장했다. 업무계획서 전체 보고서에는 두 번째 단락에 있던 경제민주화가 전체 보고서를 요약한 보도자료에는 첫 단락으로 옮겨졌다. 여기에는 재벌 총수의 해외계열사 공시 의무 부과, 순환출자 관련 제재, 일감 몰아주기 제재 등 재벌 개혁과 관련된 이슈들이 줄줄이 포함됐다.

우선 지난해 롯데그룹 ‘왕자의 난’ 이후 불거진 재벌의 해외 계열사를 통한 국내 계열사 지배 문제에 손을 댔다. 재벌 총수에게 해외 계열사 현황 공시 의무를 부과키로 했다. 공정위는 2월1일 4개월가량 면밀히 조사한 롯데그룹의 해외 계열사 현황 결과를 공개한다. 공정위는 롯데 측이 해외 계열사 지분 구조를 허위로 공시했다고 보고 제재를 검토 중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현대제철-현대하이스코’ 등 지난해 순환출자 강화로 결론 낸 합병에 대해서도 원칙을 지키기로 했다. 순환출자를 자발적으로 해소하지 않아 법 위반 행위가 발생할 경우 주식처분 명령 등 제재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정 위원장은 “원칙대로 한다”고 강조했다.

‘일감 몰아주기’ 등 재벌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행위에 대해서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제재를 본격화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대기업 계열사의 내부거래 실태를 상시점검하고 법 위반 혐의가 높은 기업은 직권조사해 엄중 제재할 방침이다. 정 위원장은 “CJ를 포함해서 5개를 조사했는데 4개는 법리적 검토를 하고 있다”며 “1분기 중 심사보고서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간담회에서 “경제민주화의 개념은 ‘10인10색’으로 다 다르다. 조세정의나 최저임금도 경제민주화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애초 대선 때 얘기했던 것을 중심으로 과제를 20개 만들었으니 정부는 그것을 가지고 평가한 것이다. 새로운 것을 가져와서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하면 좀 얘기가 틀린 것이다. 서운하다”고 야당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짬짜미 대책 실효성 논란

공정위는 올해 시장경제의 독버섯인 담합행위 재발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담합행위에 가담하는 사내 임직원들의 비위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가담 직원들이 감봉과 승진 제한 등의 처분을 받도록 했다. 재발 방지를 위해 이사회 의결명령 등 추가적인 제재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신영선 공정위 사무처장은 “시정명령을 내리면 담합은 중단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실효성이 제고되지 않는 한계가 있다”면서 “사내제재 의무화는 재발을 막는 좀더 적극적인 시정명령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은 ‘언 발에 오줌누기식’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담합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담합으로 인한 이득이 적발로 인해 생기는 손해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정위의 대책에는 이에 대한 대응이 빠져있다. 취재팀이 지난해 40건의 관급공사 담합 사건에 부과된 과징금 총액 2966억여원을 과징금 산정의 기준이 됐던 매출의 총액(28조5339억원)으로 나눈 비율은 1.04%로 조사됐다. 이는 같은 방법으로 산정한 2014년 1.32%에 비해 낮은 수치다. 현행 국가계약법에 따르면 매출액의 10%에 해당하는 금액까지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대형 국책사업의 담합행위가 주로 총수가 있는 대형건설사들에 의해 자행되는데 상명하복식 기업문화에서 과연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논란도 불거진다. 특히 담합 적발부터 조사와 제재까지 걸리는 기간은 3~4년 정도로 사내 징계를 하려는 시점에 관련 임원이 이미 퇴직하는 사례가 많다.

세종=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