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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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택의신온고지신] 오적어행(烏鰂魚行)

오징어가 물가에서 노닐다가 백로와 만났다. 오징어가 백로에게 말했다. “기왕에 고기 잡아 먹으면서 청절(淸節)은 지켜서 무엇 하나? 내 뱃속엔 언제나 검은 먹물 들어 있어 한번 뿜어 먼 데까지 시꺼멓게 할 수 있네. 고기들 눈이 흐려 지척 분간 못하고 입 벌려 삼켜도 알지 못하니 나는 늘 배 불리고 고긴 늘 속고 있지.”

오징어의 말은 이어진다. “가마우지 찾아가 그 날개 빌려다가 적당히 검게 해서 편하게 살아보게. 그래야 많은 고기 잡아서 암놈도 먹이고 새끼도 먹일 걸세.(子見烏鬼乞其羽 和光合汚從便宜 然後得魚如陵阜 ?子之雌與子兒)”

백로가 오징어에게 답해 가로되 “내 어찌 조그마한 이 배를 채우려고 모양까지 바꾸면서 그같이 하겠는가?(爲充玆一寸? 變易形貌乃如是)”

이에 “어리석다 백로여, 굶어죽어 마땅하리.(愚哉 汝鷺當餓死)”라고 내뱉으며 먹물을 뿜으면서 유유히 사라졌다. 다산 정약용의 저서 ‘여유당전서’에 실려 있는 ‘오징어의 행동(烏?魚行)’이란 시의 내용이다. 현실을 모르는 선비의 고결과 사회를 어지럽히는 관료의 탐욕을 극복, 경세치용과 이용후생이라는 실학정신의 실현을 꿈꾼 우화시라고 하겠다. 부패에 절은 공직자의 도덕불감증을 비판하는 데 무게를 두었음은 물론이다.

예나 지금이나 공직자 부패는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정부는 부정부패의 사전 예방을 위해 공익신고자 보호법, 청탁금지법, 공공재정 부정청구 등 방지법(부정환수법) 등 ‘반부패3법’을 추진한다고 한다. 만시지탄이다. 하지만 공직자의 부패 연루 척결과 함께 민간인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공정한 경쟁을 회피한 채 ‘급행료’ 등 뇌물로 해결하려는 심보를 버려야 하는 것이다. 수입식품 통관을 도와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은 식품의약품안전처 공무원과 수시로 금품 및 향응을 제공한 관세사, 수입업자가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힌 것은 단적 사례에 불과하다. 식약처 공무원 가운데는 ‘성 접대’까지 받았다고 하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황종택 녹명문화연구원장

烏鰂魚行 : ‘오징어의 행동이란 내용으로 부패비리’를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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