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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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금융권 중고차시장 넘본다

먼저 출사표 던진 신한은행 시세 확인 서비스 등 출시
모그룹 지원 등에 업은 KB캐피탈 동종 서비스 상반기에 내놓기로
금융권 “거래 활발해지며 관련 금융상품 매출도 급증”
핀테크 등에 밀려 먹거리 줄어 자동차 금융 한층 강화할 듯
중고차 시장은 대표적인 ‘레몬마켓’이다. 중고차 시장에서 판매자들이 주행거리나 사고유무 등을 속일 수 있어 소비자들이 싼 값에만 싸려 하고 그로 인해 시고 맛없는 레몬처럼 저급한 물건들만 거래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신뢰’를 업으로 삼는 시중은행까지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업계 1, 2위인 신한과 KB금융그룹이 중고차 시세 정보 제공 등의 서비스를 내놓으며 시장공략에 나섰다. 이는 무엇보다 중고차시장의 성장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고차 시장이 금융사들의 먹거리로 떠오른 셈이다.

◆신한-KB 서비스 출시부터 신경전


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캐피탈은 은행 등 계열사와 함께 중고차 시세제공 서비스인 ‘KB차차차’를 상반기 중에 오픈할 계획이다.

PC는 물론 모바일 웹과 앱을 통해 무료 제공되는 ‘KB차차차’ 서비스는 중고차 시세와 매물 정보는 물론 소비자 피해방지를 위한 헛걸음 보상, 매도가 보장, 환율 보장 등의 서비스를 내세우고 있다. KB캐피탈 관계자는 “지난 1년간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주행거리, 사고유무 등 시세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최대한 반영해 소비자가 중고차를 살 때와 팔 때 두 가지 버전으로 차량상태에 부합되는 시세를 산정했다”고 밝혔다.

KB캐피털은 중고차 할부금융을 제공해온 오랜 경험과 KB국민은행의 부동산 시세 노하우의 결합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KB캐피탈은 KB금융그룹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은행, 카드 등 계열사들과 함께 라오스 자동차할부금융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앞서 신한은행도 빅데이터 분석기관 및 중고차 컨설팅 전문기관과 업무협약을 맺고 ‘신한 중고차 서비스’를 출시했다.

신한은행 홈페이지를 통해 실거래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평균가격을 알려주는 ‘중고차 시세 확인’, 차량번호 입력만으로 실제 판매용 차량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실매물 확인’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공교롭게도 신한이 지난 1일 중고차 서비스 개시를 발표하고 이틀 후에 KB캐피탈도 같은 서비스를 상반기 중에 출시한다는 자료를 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중고차 시장에서 신한과 국민이 또 치열하게 맞붙을 조짐”이라고 말했다.

◆레몬마켓에 왜 은행이?

국토교통부와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차 거래대수는 366만7000대로, 신차 등록 대수(184만7000대)의 두 배에 이른다. 중고차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관련 금융상품 매출도 급증하는 추세다.

신한은행의 중고차 대출잔액은 2013년 1월 188억원에서 지난해 말 2334억원으로 불과 3년 만에 12.4배나 늘었다. 신차, 중고차, 화물차, 택시 등의 자동차대출 브랜드인 ‘마이카대출’ 잔액에서 중고차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4%에서 31%로 급증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신한이 2010년 은행권 최초로 자동차(신차) 대출을 시작해 은행 중에는 가장 앞서고 있지만, 전체 자동차 금융시장에서는 캐피털사 등에 밀려 점유율이 낮은 편”이라며 “그동안 대출상품만 취급했지만 앞으로 중고차 관련 서비스를 강화해 자동차금융의 명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KB국민은행이 부동산 시세정보로 부동산 업계 강자로 군림하듯 신한은행은 ‘신한 중고차 서비스’를 자동차금융 대표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금융사들이 중고차 시장에 몰리는 것은 신차 시장보다 경기민감도가 떨어지고, 진입 장벽도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1997년까지만 해도 신차 시장이 중고차 시장보다 약 26만대 더 큰 시장이었지만,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신차는 경기 상황에 따라 크게 급감한 반면 중고차는 흔들림이 없었다.

또 신차 시장은 현대차를 구매할 때 현대캐피털을 많이 이용하듯 캡티브 마켓(계열사 내부시장) 구조가 강하기 때문에 중고차 시장 진입이 더 용이한 것도 이유로 꼽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핀테크업체와 인터넷 전문은행 등 새로운 경쟁자들이 늘면서 기존의 금융업체들의 먹거리가 줄고 있다”며 “정부가 카드사에 부수업무 규제를 풀어줬지만 막상 다른 규제나 법률 때문에 제약이 많다 보니 기존에 해오던 자동차금융을 더 강화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