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는 박근혜 정권을 탄생시킨 일등공신이다. 대선이 치러진 2012년 내내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약속했다. 야당에게 더 어울릴 법한 진보적 어젠다를 그렇게 선점했다. 김 위원장의 작품이었다. 둘의 인연은 김 위원장의 ‘러브콜’로 시작됐다. 김 위원장은 2011년 9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선 후보군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 내가 먼저 보자고 했다”고 소개했다. 자신의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구상을 실현할 적임자로 박 대통령을 낙점한 것이다. 이후 김 위원장은 박근혜 캠프 책사로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무기로 대선 승리를 이끌었다.
류순열 경제부 선임기자 |
결별의 낌새는 정권 출범 전에 이미 나타났다. 그가 “대통령직 인수위에 경제민주화 개념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할 때 이미 험난한 여정은 예고됐다. 그래도 정권이 막 출범한 3월까지는 분위기가 괜찮았다. 그는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며 국민과 약속한 만큼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다짐하듯 말했다. 이걸로 끝이었다. 이후 그에게서 믿음과 기대를 품은 얘기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넉 달 뒤인 7월 그는 “더 이상 얘기 안 하려 한다”며 함구했고, 12월엔 “이제 관심도 없다”며 싸늘하게 답하고는 이듬해 3월 훌쩍 독일로 떠나버렸다.
저작권자의 눈에 경제민주화는 뒷걸음질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3년이 흐른 지금 이렇다할 성과는 찾아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정권 출범 채 다섯 달이 지나기 전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가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추진동력은 일찌감치 떨어졌다. 현오석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벌 일감몰아주기 과세 완화 방침을 밝히고 기업인 업어주기 퍼포먼스를 연출하며 장단을 맞췄다.
가계 살림살이만 봐도 경제민주화의 행방을 알 수 있다. 가계는 경제민주화 성과를 측정할 리트머스 시험지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이 제대로 이행됐다면 가계 살림살이는 나아졌어야 하는데 오히려 쪼그라들었다. 성장 과실의 분배에서 가계가 소외되는 흐름이 지속되는 터에 “빚 내서 집 사라”는 정부 단기부양책으로 가계부채는 폭증한 탓이다. 2014년 기준으로 성장과실의 총합인 국민총소득(GNI)중 가계몫(가계 가처분소득)으로 돌아가는 비율을 보면 한국이 56.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58.5%보다 2.5%포인트 낮은 정도다. 그러나 여기에 교육, 의료, 복지 등 사회적 현물이전을 반영한 궁극의 가계 실질소득(가계 조정처분가능소득)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 63.8%, OECD 71.5%로 격차가 확 벌어진다. 정부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반영하면 가계 빈혈이 개선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악화하는 것이다. 경제 불균형을 완화하는 정부 실력이 OECD 평균보다 한참 뒤떨어지고 있음을 이 수치는 말해주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경제민주화의 컴백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여건은 더 나빠졌다. 경제 체력은 3년 전보다 더 떨어졌고 경제주체들의 인내심은 바닥나고 있다. 더욱이 분열로 상처입은 야당의 품에서 추진동력을 찾을 수 있을까. 길은 한층 멀고 험해졌다.
류순열 경제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