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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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팀의 DNA 갖추기 시작한 현대캐피탈

‘경기 내용은 져도, 경기 결과는 승리’

스포츠 세계에서 절대 강자는 없다. 아무리 강한 팀이라고 해도 당일 컨디션에 따라 다소 전력이 약한 팀에게 잡아먹히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강팀과 약팀을 가르는 요소 중 하나는 경기력이 좋지 못해도 결과는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느냐 여부다.

지난 시즌 5위에 그치며 프로 출범 이후 처음으로 ‘봄배구’에 실패했던 현대캐피탈. 불과 한 시즌 만에 강팀으로 탈바꿈했다. 여기엔 집요할 정도로 평소 상대 영상 분석을 통해 패턴을 파악하는 최태웅 감독의 빛나는 분석력과 과감한 작전 지시가 큰 몫을 하고 있다.

현대캐피탈과 한국전력의 5라운드 맞대결이 펼쳐진 7일 수원체육관. 이날 경기 전까지 10연승의 파죽지세를 보이던 현대캐피탈이었지만, 이날은 분명히 경기력이 좋지 못했다. 토종 라이트 문성민의 공격성공률은 경기 내내 20~30%를 오갔고, 팀 공격 성공률도 좀처럼 50%를 넘어서지 못 했다. 반면 한국전력은 세터를 제외한 주전 5명 모두가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릴 정도로 공격과 수비에서 확실히 앞선 모습이었다.

현대캐피탈은 좋지 못한 경기력에도 결정적인 순간 집중력을 발휘하며 승부를 5세트로 끌고갔다. 그러나 5세트도 12-14로 끌려가며 이대로 연승행진이 ‘10’에서 멈추는 듯 했다.

이 순간 최태웅 감독의 귀신같은 통찰력과 용감무쌍한 작전이 나왔다. 상대 사이드 공격을 원블로킹으로 비워주는 한이 있더라도 속공이나 중앙 후위공격 등 가운데 공격을 틀어막으라는 지시였다. 상대의 주 공격수인 얀 스토크와 전광인이 모두 후위 포지션이었음을 감안해도 분명 도박같은 작전이었다.

최 감독의 과감한 선택은 적중했고, 순식간에 패배의 그림자를 지워내고 승리를 쟁취해냈다. 12-14에서 신영석이 상대 전진용의 속공 두 개를 연달아 막아내며 동점을 만들어냈고, 이어 문성민이 전광인의 중앙 후위 공격 시도까지 막아내며 순식간에 15-14로 역전에 성공해냈다. “공격의 폭을 넓히라”는 신영철 감독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연달아 세 번을 가운데 공격을 시도한 한국전력 세터 강민웅은 그제서야 부랴부랴 라이트 후위의 얀 스토크에게 공을 올렸지만, 스토크의 공격마저 사이드라인이 벗어났다. 그렇게 현대캐피탈의 11연승은 완성됐다.

경기 뒤 최태웅 감독은 “상대 강민웅 세터의 평소 토스스타일이 위기 때 속공을 빈번하게 사용하더라. 그래서 가운데만 막으라고 지시한 게 적중했다”며 막판 놀라운 역전극의 비결을 설명한 뒤 “신영석과 문성민의 작전수행능력이 좋았다. 감독은 선수들이 지시한 것을 그대로 따라줘서 좋은 결과를 얻으면 신이 난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선수들이 11연승을 해오기까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오늘도 사실 진 경기가 맞는데, 우리에게 운이 많이 따랐다. 그러나 그 운 역시 우리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상대를 물고늘어졌기에 찾아온 것이다. 우리 선수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감독과 선수단이 하나로 똘똘 뭉쳐 감독의 작전 지시를 완벽히 이행하는 현대캐피탈. 올 시즌 보여주고 있는 ‘환골탈태(換骨奪胎)’의 면모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시즌 막바지 들어 거침없는 연승행진을 보이고 있는 현대캐피탈의 상승세의 끝이 어디일지 주목된다. 

수원=남정훈 기자 che@segye.com
사진제공= 발리볼코리아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