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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버벌 퍼포먼스 ‘난타’ 준비 단계부터 참여해 20년 가까이 무대에 서온 김문수 배우는 “지난해 12월에 중국 광저우에 전용관이 문을 열었는데 반응이 좋다”며 “‘난타’는 이제 중국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됐다”고 말했다. 하상윤 기자 |
“오랜 세월 알아 왔으니. 둘도 없이 친한 친구죠. 잘돼서 뿌듯하고요. 더 감사한 건, 큰 탈 없이 여지껏 순탄하게 온 점이에요.”
그가 ‘난타’에 합류한 건 1996년 봄이다. 당시 한 박람회에서 선보인 7분짜리 퍼포먼스가 계기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연극을 한 그는 서울예술전문대 연극과를 거쳐 당시 10년 넘게 배우로 활동 중이었다. 그와 동료들은 냉장고와 양동이로 리듬을 만들어 보였다. 송승환 현 PMC프로덕션 대표가 ‘함께하자’며 연락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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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함께 준비하던 밴드 친구 6명이 의견 충돌로 나가버리자, 마음을 돌리느라 애쓰기도 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생소한 장르였지만 당시 외국에는 엄청난 퍼포먼스가 많았다”며 “차별화를 고민하다가 보통 퍼포먼스에는 없는 드라마를 추가하자고 제안했고, 그게 적중했다”고 말했다. 첫 공연을 마치자 “피시통신에서 새롭다, 신선하다며 난리가 났다”고 한다. 입소문이 무섭게 퍼졌다. 앉을 자리가 없어 서서 보는 관객이 생겼다.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앙코르 공연에 들어갔다. 객석 점유율이 12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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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만들고 칼로 도마를 두드리고 야채를 썰면서 리듬을 쌓는 걸 신기하게 본 거예요. 저렇게도 공연이 되는구나 하고요. 여기에 코미디가 들어가니 관객을 사로잡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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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을 다니는 동안 기억에 남는 관객도 많았다. 2000년대 중반 오스트리아에서는 배우들이 신나게 북을 울리자 한 관객이 머플러를 흔들며 춤췄다. 그는 “우리 리듬인데 저 사람이 어떻게 공감할까 싶었는데 북 치는 소리가 심장을 두드리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한 일본 여성 관객은 초연부터 10년 넘게 한국으로 공연을 보러 오기도 했다. ‘난타’로 쌓인 추억이야 끝이 없지만, 가장 기뻤던 순간은 공연 중 마음이 뜨거워질 때다.
“마지막에 북을 치다가 우리 리듬에 관객의 호흡이 합일되는 순간이 가끔 있어요. 그때 가슴에서 불덩어리가 올라와요. 굉장히 기분이 좋죠. 힘든 건 매너리즘이에요. 매일 같은 걸 하니, 어느 순간 익숙한 걸 하기 싫어질 때가 있어요. 그래도 막상 무대에 오르면 재밌어서 여지껏 올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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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는 체력이 허락하는 한 계속 설 겁니다. 아직 현역에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놀라요. ‘아직도 니가 그걸 두드리고 있어’ 하면 ‘아직 멀었어’ 하죠. 우리나라에도 ‘난타’를 못 본 분들이 많아요. 직접 보여주면 백이면 백 재밌어해요. ‘두드리기만 하는 줄 알았더니 드라마가 있으면서 재밌네’ 하면서요. 그러니 직접 와서 눈으로 확인하세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