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가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남기는 상처는 깊고도 날카롭다. 범죄 피해자 상당수가 정신·육체적 충격, 경제적 고통, 보복범죄 우려 등에 시달린다. 희대의 연쇄살인마 유영철에게 희생된 피해자의 친동생, 안양 초등생 납치살해 사건 피해자의 아버지처럼 자책감과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한다.
강신명 경찰청장이 1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피해자 보호·지원 감동 스토리 경진 대회`에 참석해 게시된 자료들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
“그 사람이 교도소에서 또 무슨 일을 꾸밀지 무서워요.” 악몽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 채 술과 수면제에 의지하던 A씨가 21차례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주선도 했다. A씨의 안전을 위해 개명과 차량 번호판 교체를 도왔고, 법무부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거주지도 이전했다. A씨는 최근 직장도 옮겨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부산 해운대구의 셋방에서 이웃과 전기세 문제로 말다툼을 하다 둔기로 얻어맞아 두개절 골절, 눈 파열 등 중상을 당한 B(59)씨도 전담경찰관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일용직 노동자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던 B씨는 약 2500만원의 치료비 등을 지원받았고, 8년간 연락이 끊겼던 누나와도 극적으로 상봉할 수 있었다.
지난해 2월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피해자 전담경찰관 발대식'에서 경찰관들이 결의문을 채택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하지만 경찰의 피해자 보호·지원 체계가 정착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한국피해자학회장인 오경식 강릉원주대 교수(법학)는 “범죄 피해자가 도움이 가장 절실한 시기에 제일 먼저 접하는 기관이 경찰이라는 점에서 경찰청이 뒤늦게나마 피해자 보호 정책을 추진한 점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책임자(경찰청 피해자보호담당관)가 총경급이어서 권한이 미흡하고 (대책이) 흉내내기 수준에 머무를 수 있다”고 했다. 살인·폭력 등 5대 강력범죄 발생건수가 연간 50만건을 웃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국 209명뿐인 전담경찰관 수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경찰 직제에 아직 정식 반영되지 않아 전담경찰관의 신분·업무 안정성도 떨어진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사에서 열린 ‘피해자 보호·지원 감동스토리 사례 발표회’에서 “경찰은 이제 ‘범죄척결자’(Crime Fighter)에서 ‘문제해결사’(Problem Solver)로 변모해야 하며, 사후보호는 범죄예방, 수사와 함께 경찰의 기본 임무로 자리잡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 조직과 직제를 정비하고 피해자보호 관련 업무의 틀을 명확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