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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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예술인 복지 첫발은 뗐지만

프랑스 파리 근교에 있는 소도시 카샹에서 한동안 지낸 적이 있다. 예술가공동체를 뜻하는 ‘라 시테 다르티스트(La cite d’artistes)’라는 예술가마을이 만들어져 막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예술가마을은 도심 외곽지역의 언덕에 조립형 철골구조물로 한 동에 두 가구가 입주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열한 개 동이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는데 건물 아래층에는 아틀리에가, 윗층에는 비좁은 주거공간이 설치돼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쿠바 출신 조각가는 가족과 함께 지내며 창작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축복이라고 했다. 

류영현 문화부장
이 같은 작은 규모의 예술가마을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프랑스 문화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손을 잡고 예술인 정착지를 만들어서만은 아니다. 프랑스 정부의 문화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열린 정책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예술가마을은 몇 가지 원칙을 정해 놓고 있다. 소유는 불가능하지만 입주자는 원할 때까지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아무 때나 떠나도 된다. 적은 임대료만 내면 자국민뿐만 아니라 망명 예술가에게도 문이 열려 있다.

카샹에 예술가마을이 탄생한 것은 1990년 당시 자크 카라 시장의 강력한 의지에 힘입은 바 크다. 프랑스 정부가 파리 외곽지역을 문화예술적으로 발전시키려는 ‘방리외(Banlieue) 89’ 프로젝트를 실시하자, 이를 카샹에 유치한 것이다. ‘방리외 89’는 슬럼가로 전락하는 지역에 예술적인 건축물을 짓고 예술인을 끌어들여 지역 재생을 추진하자는 정책이다.

카샹의 예술가마을을 설계한 건축가 장 베르나르 크렘니체와 아르노 에인즈는 “외부와의 소통과 열린 공간을 지향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뒤 새삼스레 카샹을 떠올리게 된 것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예술인복지법 때문이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예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잇따르자 문화예술계는 이른바 ‘최고은법’으로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겨우 월급 30만원으로 생활하던 무명배우가 가난을 이기지 못해 유명을 달리하는 일은 그치지 않았다.

급기야 문체부는 최근 예술인복지법을 보강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예술강사 파견 학교 규모를 확대하고, 전국 어린이집과 유치원 255곳에 미술·음악교육을 지원하기로 했다. 연출, 작가 등 기초창작인력 양성을 위한 실습형 ‘공연예술창작스튜디오’를 신설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고용보험 가입이 어려운 저소득 예술인을 추가로 지원하고, 무술연기자·무용수 등 상해위험이 높은 직종 예술인들에게 산재보험료를 지원하는 등 저소득·고위험 예술인에 대한 복지도 확대하기로 했다.

이 같은 정부의 지원정책은 문화예술인에게는 가뭄 속 단비와 같은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최저생계비 이하의 수입으로 극빈층 생활을 하고 있는 예술인들이 맘껏 끼를 발산하고 재능을 키울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기에는 아직도 부족해 보인다.

류영현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