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성 세계파이낸스 기자 |
CD금리 담합 혐의가 확정되면, 과징금과 차주에 대한 배상 등 은행들이 수천억원의 손실이 불가피한 탓이다. 금융소비자원은 “총 500만명의 차주가 4조1000억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담합이 사실이라면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공정위가 CD금리 담합 행위가 일어났다고 지적한 ‘2011년 12월~2012년 7월’ 기간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특수성에 비춰볼 때 담합의 근거가 약해 보인다. 그 때문에 공정위가 "무리하게 엮은 것 아니냐"는 음모론적 시각도 없지 않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공정위가 담합으로 보는 주요 근거 중 하나는 당시 통안증권, 국고채 3년물 등의 금리가 각각 0.1~0.2%포인트 가량 내린 반면 CD금리만 연 3.54~3.55%로 거의 고정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반면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행정지도에 따라 CD 발행을 대폭 줄이다보니 일어난 현상”이라고 반론한다.
2000년 초중반부터 은행의 경영 흐름을 살펴보면 은행들의 하소연에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다.
2000년대 초중반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에 집중했다. 당시 부동산이 폭등하면서 주택담보대출 수요도 급증했다.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을 ‘안전한 대출’이라고 여겼기에 최대한 돈을 끌어 모아서 빌려줬다. 예금이 모자라자 CD를 대량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일부 은행은 예대율이 120%까지 치솟을 정도였다.
그러던 중 2008년 갑자기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은행들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시달려야 했다. 금융당국은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은행들에게 예대율을 100% 이하로 유지하고, CD 발행을 자제하도록 지도했다. 2010년에는 CD금리를 대체하기 위한 코픽스도 도입했다.
이에 따라 2008년말 20조원에 달하던 은행 CD 발행잔액은 매년 급감했다. 2011년말에는 3조2000억원으로 뚝 떨어졌고 그 다음해는 2조4000억원까지 줄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 기간 중 은행의 CD 발행이 사실상 멈췄다”며 “발행물량이 없다 보니 거래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CD 거래가 사라지다 보니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토대로 CD금리가 산정된 것을 은행의 담합으로 보는 것은 과한 시각”이라고 덧붙였다. 이 기간 중 한은 기준금리는 3.25%로 동결된 상태였다.
또 다른 관계자도 “발행도 하지 않는 CD금리를 무슨 수로 담합하겠느냐”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공정위는 은행에서 CD금리를 담당하는 실무자들의 정례 모임이 있었다는 점도 담합의 근거로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례 모임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금리 수준을 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 측은 "고작해야 차장이나 과장급이 만나는 자리인데 거기서 금리가 정해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한다. 공정위가 담합이라고 보는 근거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임원급이 아닌 실무자들이 과연 담합을 할 수 있겠느냐는 항변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
그러다 보니 “공정위의 CD금리 담합 조사 자체가 금융권에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실제로 금융당국에서는 “공정위의 CD금리 담합 조사는 그간의 관례를 어긴 것”이라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본래 개별 은행의 검사 및 감독은 금융당국이 맡고, 공정위는 이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며 “CD금리 담합 조사는 이 관례를 깬 것”이라고 강조했다.
만약 공정위가 ‘금융권으로 영향력 확대’를 노렸다면 최근 은행들의 반응으로 봐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셈이다. 만일 "그건 지나친 오해"라고 주장한다면 제3자가 봐도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놔야 할 것이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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