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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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단일민족의 우물’ 벗어나야 한다

편협한 배타심 버리고 다른 문화 존중을
동화주의에 치중하는 정책 되돌아볼 때
우리보다 다문화사회를 먼저 경험한 유럽 선진국에서 다문화정책에 관해 백기를 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이다. 2010년 후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다문화주의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바이에른 주지사이자 기사당(CSU) 당수인 호르스트 제호퍼는 심지어 “다문화주의는 죽었다”고 주장했다. 과거 외국인은 독일 주류사회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결핍된 존재’라며 호의적이던 독일이 1970년대 중반부터 외국인 학생 수가 점차 증가함에 따라 정상적인 교육을 방해하는 ‘문제집단’이라고 진단한 것을 시작으로 학교 내 총기난사 사건, 자폭테러 사건 등을 겪으면서 점차 부정적인 인식으로 돌아서 드디어는 다문화정책 전반을 포기하게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다문화정책은 어떠한가. 부언하건대, 다문화주의란 다양한 언어와 문화, 민족, 종교 등을 통해서 서로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철학과 이념을 의미한다. 1970년대 ‘국민교육헌장’에서 엿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그동안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단일민족임을 제일로 여겨왔다. 민족주의에 관한 주창으로 단일민족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이 저변에 서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배타적 자민족 중심주의로 다민족이나 다인종 혹은 그와 같은 국가를 다소 낮춰 보는 경향이 내면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길연 다문화평화학회 회장
이미 국내 체류 외국인이 100만명을 넘어선 지금, 우리는 우리 사회를 다문화사회라 부른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다문화사회를 표방하면서도 동화주의에 매몰되어 왔다. 동화주의란 하나의 언어, 하나의 문화, 하나의 민족이 중심이 되고 타 문화는 이 중심으로 흡수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의미한다. 물론 현재 우리 사회 가운데 단일민족을 내세울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의 생각과 의식은 민족주의를 주창하던 시기와 별반 다를 바 없다.

다문화사회를 형성하게 된 이민족 유입은 주로 경제적 측면에서 생존의 터전을 찾아 이뤄진다. 유럽 선진국의 다문화사회 역시 주변 저소득 계층의 개발도상국으로부터 다양한 이주민들이 유입되어 형성된 것이다. 아울러 이들의 다문화정책은 거의 대부분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동화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와 흡사하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온 소수집단은 내국민으로부터 다른 외모나 언어 그리고 다른 종교 전통 등으로 말미암아 ‘이질적인’ 집단으로 간주되었다. 이 역시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동화주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결과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다문화라는 용어 역시 경제적 논리로 재단되고 있다. 우리의 의식 가운데는 미국이나 캐나다 혹은 유럽 선진국 출신 외국인에게는 다문화라는 용어를 적용하지 않는다. 경제적 개발도상국인 필리핀이나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 출신 이주자에게만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경제적 논리에 입각한 동화주의의 발로로 여겨진다.

민족주의적 동화주의는 이민자들이 새로운 문화권에 유입되면서 자신의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포기하고 그 주류 민족의 언어와 문화에 동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동안 우리의 다문화정책은 주로 다문화 이민자들의 정착과 적응을 위해 지원해 왔다. 단순한 동화주의를 넘어 이주민의 문화와 정체성을 살려나갈 수 있는 진정한 다문화주의 토양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자국의 문화와 정체성에 용해되도록 유도한 선진국 다문화정책의 전철을 밟고 있지 않나 돌이켜볼 때다. 정부 각 부처마다 경쟁하듯이 쏟아내는 다문화정책, 진정한 다문화주의가 무엇인가 세심히 두드려 보고 진단할 때인 것이다.

이길연 다문화평화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