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을 갖고 있지 않은 공매도 세력이 주가 하락에 베팅해 떼돈을 벌 때 정작 주식을 갖고 있는 개미들은 속수무책이다. 공매도 때문에 손실이 더 커진다는 피해의식이 깊어간다. 논란이 끊이지 않고 공매도 폐지 운동까지 벌어지는 이유다.
반대로 ‘큰손’(기관투자자, 외국인)들에게 공매도는 유용한 수단이다. 주가 하락기에도 수익을 안겨주는 ‘도깨비 방망이’이다. 공매도란 보유 주식이 없는 상태에서 주가 하락을 예상해 증권회사에서 ‘주식을 빌려’(대차) 판 뒤 나중에 되사서 갚는 매매행위를 말한다.
매도 뒤 주가가 하락할수록 차익이 커진다. 논란의 근본 이유는 개미들은 사실상 이용할 수 없는 수단이라는 점이다. 기관이나 외국인과 같은 ‘큰손’들은 공매도를 맘껏 활용해 사실상 주가를 끌어내릴 수 있지만 개미들은 그럴 힘이 없다. 공매도는 개미들에게 불공정한 제도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큰손들은 공매도를 하려면 주식을 빌려야 하는데 여기에 국민연금 보유 주식이 활용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공매도에 이용될 수 있는 주식 대차(대여)로 연간 200억원에 육박하는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17일 국회 정무위 신학용 의원(국민의당)이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작년 국내 주식 대여를 통해 190억원을 벌었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대여로 얻은 수입은 2013년 98억원에서 2014년 146억원, 2015년 190억원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국민연금의 주식대여액은 평균 잔고를 기준으로 2013년 4250억원에서 2014년과 2015년 6692억원, 6979억원어치로 증가했다.
주식 대여는 기관이나 개인이 보유 주식을 증권사에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이다. 큰손들은 이를 다시 빌려 공매도 등에 활용한다.
주식투자를 하는 일반 국민은 공매도에 분통을 터뜨리고,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은 공매도로 수익을 내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국민이 투자한 자금으로 사들인 주식을 공매도 세력에게 빌려주는 게 부적절하다는 비판여론이 있다. 국회 정무위 문턱도 넘지 못했으나 지난해 홍문표 의원(새누리당)은 국민연금의 주식대여를 금지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개미들의 공매도 피해의식은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 셀트리온 주주들은 최근 공매도 세력에 대한 항의 표시로 주식대여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KB투자증권, 유진투자증권, LIG투자증권으로 집단적으로 계좌를 옮기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대여 주식 상당량이 공매도에 활용될 수밖에 없는 만큼 국민연금에 대해서도 성토하는 분위기다.
개미들의 공매도 혐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천삼 한국거래소 주식시장부장은 “공매도가 주가 하락을 유발한다는 증거는 없으며 위험관리 등 정상적 활용 측면이 많다”면서 “일부 악용 가능성 때문에 제도를 없앨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개인 투자자들이 공매도를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기관만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비대칭성 때문으로, 개인의 공매도 접근 가능성을 높여 균형을 맞추는 방향이 바람직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