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떤 기사의 일부를 보자. ‘대다수 EU(유럽연합) 법규는 소수 대기업에 도움을 주지만 수십억 파운드의 국민 혈세를 낭비한다.’ EU 정상들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저지를 위한 협상안을 타결함에 따라 영국에서 EU 잔류 또는 탈퇴를 주장하는 여론전이 뜨거워질 것이라는 취지의 기사를 인용해 분석한 기사다.
인용한 글이 영어였다면 ‘혈세’의 원문에는 ‘피’(blood 또는 bloody)라는 뜻이 없었을 것이다. tax(택스) 또는 precious tax(귀중한 세금)란 말을 그렇게 번역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혈세(血稅)는 한·중·일(韓中日) 등 한자문화권에서 쓰이는 말이다. 血은 피, 稅는 세금이다.
피 혈(血)의 어원과 변천. 제사 때 제물로 잡은 소 같은 희생물(犧牲物)의 피 한 방울을 제기(祭器)에 떨어뜨리는 그림이 ‘피’를 뜻하는 첫 글자 갑골문이었다. 이락의 저 ‘한자정해’ 삽화 |
“나는 기사에서 ‘혈세’를 발견하면 반드시 ‘세금’으로 고친다. 세금 관련 기사를 쓸 때 기자들은 ‘혈세를 낭비했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박근혜 대통령도 방산비리 등에 대해 ‘국민 혈세를 낭비해온 문제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고 단호하게…’라고 밝혔다.”
다른 (후배) 기자들의 글을 읽어 고치는 데스크(desk) 역할의 얘기다. 당장 이 (선배) 기자에게 기사를 보일 양이면 ‘혈세’보다는 ‘세금’을 쓰는 게 낫겠다. 그는 자신이 그 글에 쓴 대로 ‘애초 혈세는 귀중한 세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아니라, 생명을 바쳐 병역 의무를 다한다는 상징적 표현’이라고 알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이가 쓴 이 글을 인용해 논리를 편다.
“메이지 5년인 1872년입니다. 포고형식으로 징병명령이 발령됩니다. 이때 병역의무를 혈세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때 혈세는 전쟁에서 피를 흘린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런 혈세라는 단어가 우리나라로 수입되어 곧 세금이 되었습니다.”(최재천 의원 블로그)
원래 혈세가 ‘(전쟁터에서) 피 흘리는 의무’ 즉 병역(兵役)이었는데 잘못 쓰이고 있다, 그런 언어의 와전(訛傳) 때문에 세금이 혈세란 말과 같은 의미로 이해되고 그런 오해에서 생기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대충 이런 주장이다. 그는 ‘내 사전에 혈세는 없다’는 말로 글을 맺는다.
일제는 우리에게 전쟁에 나가라고 강요했다. 친일 모리배(謀利輩) 지식인과 신문들도 ‘천황폐하의 영광을 위해 죽으라’며 글을 내고 강연을 했다. 그때 ‘피로 내는 세금’인 병역의 뜻으로 새로 ‘혈세’(血稅)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연합뉴스 |
일본에서도 지금 사람들 대부분은 혈세가 병역의무인지 모른다. 우리처럼 ‘피 같은 세금’이라고 알고 쓴다. 전쟁범죄 일으킨 벌로 군대에 가야 하는 의무가 없어져서 그렇게 변했을 수도 있다.
한자(漢字)는 한 자 한 자가 한 단어다. 혈(血)과 세(稅)는 각각 독립적인 낱말이다. 글자(단어)가 모여 血稅와 같은 숙어(熟語·익은말)가 된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는 한시(漢詩) 구절처럼 혈세도 단어들이 모여 이룬 문장 또는 숙어다.
혈(血)와 세(稅)가 그렇게 만나면 ‘피로 내는 세금’도 되고 ‘피 같은 세금’도 된다. 전쟁이 난다든지 해서 국민 모두가 헌혈(獻血)을 해야 할 상황이 된다면 이런 의무를 ‘혈세’라고 새롭게 쓰는 것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겠다. 한자의 탁월한 의미 생산능력 즉 조어력(造語力)이다.
사전은 혈세를 ‘가혹한 조세’ ‘피와 같은 세금이라는 뜻으로 귀중한 세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푼다. 중국에서는 혈한세(血汗?)라는 말을 쓴다. 한(汗)은 땀이니, 피와 땀이 세금과 만나면 그 뜻이 좀 더 구체적이다.
가혹(苛酷)한 이미지로 세금이 인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혹하지 않아야 한다는 바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금으로 거둔 나라의 예산을 다루는 공직자 또는 정치가들은 세금의 뜻을 ‘피 같은 세금’의 혈세로 뼈에 새겨 명심(銘心)하는 것이 옳다. 한겨레의 그 기자도 여러 뜻을 살펴 자신의 사전에 다시 ‘혈세’를 넣는 것이 어떨지.
‘춘래불사춘’의 주인공인 절세미녀 왕소군의 석상. 그녀의 미모가 만들었을 이 시 구절은 원래의 뜻과는 다른 상징으로 내내 활용돼 왔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봄春 올來 아니不 닮을似 봄春의 춘래불사춘, 정략(政略) 결혼으로 흉노 왕에게 시집간 전한시대 절세미녀 궁녀 왕소군(王昭君)의 서러운 심사(心思)를 그린 동방규의 시 구절이다. 시의 뜻은 ‘(꽃과 풀이 없는 곳이어서) 봄 왔으되 봄 같지 않다’는 것인데, 그와는 다른 상황을 묘사하거나 상징하는 말로 내내 활용돼왔다.
그 사례 중 하나다. “춘래불사춘이라고 하던가요, 봄이 와도 봄이 온 것 같지 않네요. (국내외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큰 상황입니다.” 이주열 한은총재의 인터뷰 내용이다. 기대하는 상황 대신 악재(惡材)만 계속된다는 표현이다.
‘춘래불사춘’이란 말(이름)과 그것이 표현(상징)하는 내용의 관계다. 이름은 상징을 위한 제목인가. 최근 작고(作故)한 이탈리아의 지성 움베르토 에코가 지은, 영화로도 유명한 소설 ‘장미의 이름’이 상징하는 바도 심상(尋常)치 않다. 단테의 ‘신비스런 장미’나 장미전쟁 장미십자회 등 역사적으로 쌓여온 ‘장미’의 이미지를 상징의 도구로 삼았다고 한다.
상징과 비유에 익숙해지는 것이 언어의 속살과 만나는 것일 터. 말글과 이를 통한 철학의 고양(高揚)을 위해서는 독서와 사색(思索)이 필요하리라. 클릭 검색(檢索) 말고, 진짜 공부 말이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