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택시승강장에서 택시 잡는 사람 있나요?"

서울에만 411곳… 이용객 적어 ‘있으나 마나’
22일 오전 6시30분쯤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 아파트촌. 직진 거리로 1㎞ 남짓 거리에만 택시승강장이 4개 설치돼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출근길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2시간가량 지켜 본 택시승강장 4곳에는 이용 승객과 택시가 전혀 없었다.

택시들은 모두 인근 횡단보도 근처에 대기하고 있다가 손님을 태웠다. 출근길 시민은 도로 변에서 손을 흔들다 멈춰선 택시 안으로 사라졌다.

모범택시 기사 박모(55)씨는 “택시승강장을 이용하는 손님이 거의 없어서 주로 횡단보도에서 대기하다 손님들을 태운다”고 말했다.

22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의 한 택시승강장(왼쪽)이 이용하는 시민이 없어 텅 비어 있는 반면 서울역 앞에 설치된 택시승강장은 택시를 타려는 승객들이 줄지어 서 있다.
남제현 기자
규정과 현실이 따로 놀고 있다는 얘기다. 도로교통법상 횡단보도나 버스정류장 10m 이내는 주·정차 단속지역임에도 사실상 택시승강장처럼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 안전과 편의를 위해 설치한 택시승강장이 정작 승객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도로 변에서 손만 들면 택시를 잡아 탈 수 있는 문화와 도로 사정이나 상권 등 환경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설치됐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22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지역 택시승강장은 현재 도봉구의 2개부터 영등포구의 39개까지 모두 411개 설치돼 있다. 2010년 5월부터 서울시 예산사업이 아닌 민간투자사업으로 전환돼 J사가 설치 및 유지관리비를 부담하고 광고수익을 전부 가져가고 있다. 하지만 이용객은 별로 없다.

회사원 이모(30)씨는 “외근이 잦아 하루에도 몇 차례 택시를 이용하지만 승강장을 이용한 경험은 없다”며 “내가 있는 곳으로 택시를 간편하게 호출할 수 있는 세상 아니냐”고 반문했다.

애초부터 이용객이 적었던 상황에서 콜택시에다 최근 카카오택시 등 스마트폰앱과 연동하는 서비스가 출시돼 인기를 끌면서 택시승강장의 존재가치가 희미해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서울 택시승강장 중 74곳은 가로변 버스전용차로와 중복돼 택시가 승객을 태우려 하는 과정에서 교통 정체가 불가피하다.

특히 서울역이나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등 승객 수요가 많은 곳은 승강장부터 택시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늘어서 가로변 차선 하나를 아예 점거하다시피 한다.

이처럼 택시승강장이 애물단지가 된 지 오래이지만 2005년 437개소이던 택시승강장은 지금까지 26군데만 사라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10년 전에 만든 승강장들은 도로 환경이 바뀌면서 엉뚱한 곳에 있는 경우도 많다”며 “1∼2명이라도 이용하면 이용률이 떨어진다고 철거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박진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시와 지자체의 잘못된 수요예측과 설계 등으로 시민의 불편을 초래하는 택시승강장이 많다”며 “불필요한 택시승강장은 과감하게 철거하고 서울역 등 이용객이 많은 곳의 택시승강장은 시민 편의를 위해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선영·이동수 기자 00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