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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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넌트에 빠진 미국 아메리칸 드림의 추억

아카데미 시상식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2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의 돌비극장에서 열리는 제88회 시상식에서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빅쇼트’ ‘마션’ 등의 작품이 오스카를 두고 각축을 벌일 예정이다. 특히 ‘레버넌트’는 앞서 골든글로브 작품상에 이어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쓸어 담으며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할리우드는 왜 유독 ‘레버넌트’에 열광하는 걸까. 그것은 ‘가장 강한 나라’를 추구하는 아메리칸 드림과 무관치 않다.

할리우드는 당대의 사회 분위기나 정치이념, 문예사조, 대중들의 집단심리를 정확하게 읽어낸 뒤 이를 재빨리 영화로 만드는 데 매우 능숙하다. 인간복제나 인공두뇌, 가상현실 등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때는 ‘매트릭스’ ‘터미네이터’ ‘여섯 번째 날’ 등을 제작했고, 자연재해나 세기말의 불안의식이 팽배한 시기에는 ‘볼케이노’ ‘딥 임펙트’ ‘아마겟돈’ 같은 영화들을 내놓았다. 집에 홀로 남겨진 아이들에 대한 맞벌이 부부들의 우려가 미국 사회의 첨예한 문제로 부상했을 때엔 ‘나 홀로 집에’로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서부개척기의 강인함을 가져왔다. 할리우드 영화는 가정을 소중히 그린다. 그들의 가정관은 서부개척시대에서 기인한다. 서부로 이주해간 미국인들이 광야에 집을 지을 때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은 가정의 보호였다. 언제 어디서 코만치나 아파치 같은 인디언들이 습격해 올지, 또 백인 무법자들이 들이닥쳐 약탈과 살육을 자행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에는 목숨을 걸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가정을 지키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레버넌트’의 클라이맥스는 복수의 완성이다. 하지만 영화는 광활한 대자연에서 발버둥치는 인간의 삶을 이야기 한다. 그것은 나름 강인한 삶이다. ‘갈수록 점점 더 젊어지는 나라’, 여전히 지구 전역을 보안관처럼 지키는 ‘최강 미국’, 즉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적 성취다. 

‘원죄의식’도 인기에 한몫 거든다. 미국이 짊어지고 가야 할 영원한 짐이자 악몽은 ‘인종 문제’다. 건국 초창기 미국인들은 신대륙에 낙원을 건설하려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낙원을 만들려면 두 가지가 필요했다. 하나는 낙원을 조성할 땅을 원주민들에게서 빼앗아야만 했고, 또 하나는 그 땅을 경작할 인력으로 노예를 들여와야 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인디언을 멸종시켰고, 흑인의 인권을 말살하고 노예로 착취하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 낙원은 건설과 더불어 원죄로 오염됐고, 미국의 꿈은 미국의 악몽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할리우드는 인종 문제를 다룬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낸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인종 간 화해의 꿈을 상상 속에서나마 이루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은 오늘날 미국사회에서도 여전히 나타난다. 영화는 인디언과의 ‘화해’를 바탕에 깔고 있다.

‘레버넌트’에 대한 관심은 주연을 맡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에게로 옮아간다. 그는 아카데미에서 ‘길버트 그레이프’(1993)로 조연상 후보에, ‘에비에이터’(2004) ‘블러드 다이아몬드’(2006)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3)로 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모두 수상에 실패했다. 그가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4전5기’의 신화를 쓸지 지켜볼 일이다.

김신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