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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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고대사에 등장 ‘곤지’는 누구인가

정재수 지음/논형/1만6500원
백제와 곤지왕/정재수 지음/논형/1만6500원


5세기 중엽 백제왕 곤지(昆支)에 얽힌 사연이 담긴 역사다큐물이다. 곤지가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한 사실은 일본의 정사서인 ‘일본서기(720년)’에 기록돼 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죽은 이야기는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일본서기는 곤지를 백제왕 또는 왕자로 기록했다.

작가에 따르면 곤지의 직계 후손이 살았던 일본 현지에는 ‘아스카베진쟈(飛鳥戶神社), 일명 ‘곤지왕신사’가 지금까지 유지해오고 있다. 곤지는 5세기 한·일 고대사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많지 않은 기록이지만 한국과 일본 역사서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461년 곤지는 당시 일본 수도였던 야마토에 들어와 아들 5명을 두었다. 그의 아들들은 대대로 백제 동성왕, 무령왕이 되었고, 후손들은 야마토 정권의 천황이 되었다.

앞서 고구려 광개토왕은 3차에 걸쳐 남벌을 단행, 백제를 초토화한다. 396년에는 금강유역과 한강유역을, 400년에는 낙동강유역을, 407년에는 영산강유역과 남해안일대를 휩쓸었다. 고구려의 침공에 쫓겨 금강, 영산강 유역의 삼한 지배층과 백성들은 대규모로 일본으로 망명하여 야마토 정권을 수립한다.

백제계인 야마토 정권이 안정되자 그 지배자들은 망명 이전 지배했던 삼한 영토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백제와 갈등을 일으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61년 곤지가 야마토에 파견된 것이다. 곤지는 야마토에 머무르면서 중재에 성공한다.

이후 백제로 돌아온 곤지는 중책을 맡아 왕권의 안정화와 전후 복구사업에 매진하다 정적들에게 암살당한다. 곤지는 죽었지만, 곤지의 아들들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660년 멸망하기까지 200여 년간 왕통을 이어간다.

김신성 기자 ss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