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베르트 볼프 지음/김신종 옮김/시그마북스/2만5000원 |
1858년 7월 로마의 어느 날 새벽녘 무렵이었다. 한 수녀가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맨발의 그녀는 도망쳐 나와 필사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누군가 자신을 독약으로 살해하려 했다고 소리쳤다. 몇 달 뒤 이로 인한 종교재판이 시작됐다. 경천동지할 만한 놀라운 사실들이 쏟아지면서 유럽 사회를 뒤흔들어놓았다.
이 책은 독일 출신 사제이며 역사가 후베르트 볼프가 바티칸의 종교재판 기록을 단독 입수해 다큐멘터리로 엮은 기록이다. 로마의 성 암브로시오 성당 수도원의 수녀들은 성녀로 숭배받았다. 악마의 추방, 딥키스 축복기도, 동성애적인 수도원 입회식 등은 수도원에서 늘상 벌어졌다.
성 암브로시오 성당에 걸려 있는 성화. 성당은 하느님의 영광과 성모마리아의 영광을 체현한 곳으로 기대됐지만 19세기 추악한 사건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시그마북스 제공 |
높은 신분의 남성들은 수녀들의 방에서 밤을 지내고 수도원은 이를 비호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내용을 담았을 종교재판소의 재판 기록은 바티칸의 비밀 보관소로 옮겨지곤 영원히 사라졌다. 그것도 보다 확실히 증거 인멸됐다.
책에선 수도원에서 생긴 스캔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수녀원에서 도망쳐 나온 한 귀족 수녀가 공개한 수기에서는 사제와 수녀 간의 믿기 어려운 스캔들과, 이를 덮으려는 사제들의 음모가 낱낱이 들춰진다.
저자는 자신이 찾아낸 문서를 바탕으로, 하늘의 대신자로 추앙받는 교황이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어떻게 권력을 행사하고 행동했는지 낱낱이 기록했다. 도망쳐나온 수녀의 이름은 카타리나 폰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탈출하지 못했으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수도원 사람들은 성적 수치심을 느끼도록 그녀의 옷을 벗기고 학대했다. 동료 수녀들로부터 고립시켰으며, 외부와 단절시켰다. 수도원의 비밀을 아는 위험한 사람이라고 낙인찍어,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도록 입을 봉했다. 카타리나는 여러 차례에 걸쳐 독살 위험에 시달렸다.
수녀는 독일의 명문가문 호엔촐레른가 출신의 귀족 처녀였다. 당시 프로이센의 왕과 독일의 황제를 겸했던 빌헬름 1세와도 가까운 친척 관계였다. 그런 가문을 뒤로하고 수녀가 되기 위해 엄격한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비이성적이고, 공포스런 수도원 생활은 그녀의 꿈을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수도원의 일탈이 비단 당대에만 벌어졌을까. 저자의 의문은 계속된다. 아직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가톨릭 교회사에 따르면 수도원 안에서는 온갖 동성애적 행태를 포함한 스캔들이 벌어지곤 했다. 그런데도 한 번도 심판받은 적이 없다.
현대의 유럽 수도원에서 이런 행태들이 근절되었을까. 지금도 비인권적인 행태가 벌어질 수 있음을 저자는 암시하고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