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문 지음/미다스북스/32만원 |
원로 철학자이자 시인인 박이문(86) 선생이 쓴 글을 모은 전집이 나왔다. 미다스북스에서 펴낸 전 10권 전집은 선생이 20대 시절인 195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60여년 동안 남긴 글을 추려 묶은 것이다. 선생의 수필이 고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미국 시먼스 칼리지(1970∼1991년), 포항공대(∼2000년), 연세대(∼2010년)에서 교수를 지냈지만 “뜬구름 잡는 강단철학은 경멸한다”며 평생 어느 단체에 속하지 않고 홀로 공부하고 썼다.
그는 1955년 사상계에 ‘회화를 잃은 세대’라는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27세에 ‘폴 발레리에 있어서 지성과 현실과의 변증법으로서의 시’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곧바로 이화여대 교수로 발탁되었지만, 교수직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난다.
그가 소르본대에서 불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며 낸 논문이 책으로 출판됐을 때였다. 당시 파리에 유학 중이던 하스미 시게히코 전 도쿄대 총장이 책을 서점에서 접하고 저자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놀라면서, “동양인도 이런 논문을 쓸 수 있구나” 용기를 얻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특히 어느 한 사상가의 철학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철학자로 평가받는다.
전집은 병석에 있는 박 선생의 동의를 받아 선생과 깊은 인연을 맺고 지낸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과 정대현 이화여대 철학과 명예교수, 강학순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철학교수, 이승종 연세대 철학과 교수 등으로 이뤄진 전집발간위원회가 구성하고 편집했다. 이들은 박 선생의 저작 100여권을 모두 모아 분류, 입력, 대조하는 작업을 거쳐 전집을 완간했다.
김병익 문학평론가는 “박이문의 내면적 섭렵과 정신적 탐구는 실존적 지향을 잃고 허황하게 방황해야 하는 우리에게 참으로 든든한 지표와 격려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
정승욱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