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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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뜨락] 가시의 시간 1

허연

내 온몸에 가시가 있어 밤새 침대를
찢었다. 어제 나의 밤엔 아무것도 남지
못했고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했다.
가시는 아무런 실마리도 없이 밤마다 돋아
나오고 나의 밤은 전쟁이 된다.
출구를 찾지 못한 치욕들이 제 몸이라도
지킬 양으로 가시가 되고 밤은 길다.
가시가 이력이 된 날도 있었으나 온당치
않았고 가시가 수사(修辭)가 된 적이 있었으나
모든 밤을 다 감당하진 못했다. 가시는
빠르게 가시만으로 완전해졌고 가시만으로
남았다. 가시가 지배하는 밤. 가시의 밤

―신작시집 ‘오십미터’(문학과지성사)에서

◆ 허연 시인 약력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불온한 검은 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 ▲현대문학상, 시작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