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휠체어를 타고 지난 24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찾은 최강민(41)씨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뇌병변 1급 장애인인 최씨가 미리 표를 끊어놓은 장애인석 안내를 요청하자 극장 직원이 스크린 앞 빈 공간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영화를 관람할 때는 탈부착이 가능한 장애인석으로 지정된 좌석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서 보도록 한 규정을 무시한 것이다.
뇌병변 1급 장애인 최강민씨가 24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 맨 앞좌석에서 스크린을 올려다보고 있다. |
문화·예술활동의 차별금지 등을 담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10년이나 됐지만 가장 대중적 문화활동인 영화 관람조차 장애인에게는 문턱이 높다. 이 법에 따르면 스크린 기준 300석 이상인 영화관은 장애인이 문화·예술활동에 참여하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뇌병변 1급 장애인 최강민씨가 24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 건물 1층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안내판을 살피고 있다. 이 영화관 건물에는 휠체어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엘리베이터가 없어 옆 백화점 건물을 통해 영화관으로 이동했다. |
그는 사람들로 붐비는 백화점 매장을 지나면서 묵직한 유리문을 힘겹게 밀어내는 일을 수차례 반복한 끝에 영화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잡은 자리도 맨 앞줄이어서 눈앞 가득 펼쳐진 스크린을 향해 고개를 젖히고 2시간가량 버텼다.
최씨는 자세가 불편한지 자주 몸을 뒤척였다. 하지만 화면에 집중하며 영화를 즐기는 모습은 여느 관객과 다를 바 없었다. 영화가 끝난 뒤 최씨는 “맨 앞좌석은 비장애인들도 꺼리는 자리인데 이조차도 장애인에게 내주지 않는 상영관이 있다”며 “대형 영화관들이라도 장애인 편의 제공에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뇌병변 1급 장애인 최강민씨가 24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 내 장애인석에서 영화 상영을 기다리고 있다. |
시각장애 1급 김준형(25)씨는 “서울 시내에 정기적으로 화면해설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화관은 두 곳뿐이고 이조차도 한 달에 3일 정도”라며 “비장애인인 여자친구가 영화를 좋아해서 함께 하고 싶은데 나 때문에 그러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최근 CGV·메가박스·롯데시네마 등 영화사업자에 대해 시청각 장애인 4명을 원고로 세워 문화향유권 차별구제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이들은 소장에서 “리걸, AMC, 씨네마크 같은 미국 3대 영화관은 모두 폐쇄자막(보조기기를 통해 해당 이용자에게만 제공하는 자막), 화면해설 등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며 “발전된 기술을 장애인 배려에 활용해줬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글·사진=김승환 기자 hw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