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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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애들아 놀∼자

학원·숙제·스마트폰에 치여 노는 법조차 잊어버린 아이들/ 대학생 플레이코치… “신나요”
“선생님이 재미있는 놀이 알고 있는데, 우리 같이 놀까?”

봄방학이 한창인 지난 20일 오후 서울 중랑구 신내동의 한 놀이터. 추운 날씨에도 놀이터까지 와놓고는 멋쩍게 서 있는 아이들에게 20대 남녀 세 명이 다가섰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금세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아이들 9명이 강원구(26)씨, 박수연(24·여)씨, 권예슬(23·여)씨 곁에 모여들었다.

“자∼ 지금부터 술래잡기를 변형한 ‘좀비와 박사’라는 게임을 할 거야.” 강씨가 게임에 대해 설명한 뒤 ‘시작’을 외치자 아이들은 순식간에 흩어졌다. “꺄, 도망쳐!” 조용하던 놀이터는 아이들의 함성소리로 가득찼다. 어느새 아이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고, 일부는 두툼한 외투를 벗어던진 채 놀이에 푹 빠졌다. 강씨 등과 아이들은 이날 두 시간 동안 게임을 바꿔 가며 한참을 뛰어놀았다.

어린이들이 최근 서울 중랑구의 세화어린이공원에서 플레이코치의 지도에 따라 뛰어놀고 있다.
플레이코치 제공
어린이들이 최근 서울 중랑구의 세화어린이공원에서 플레이코치의 지도에 따라 뛰어놀고 있다.
플레이코치 제공
강씨 등은 아동의 ‘놀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모인 대학생 자원봉사자인 ‘플레이코치’다. 총 10명의 플레이코치들은 잘 놀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노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6월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각 지역의 놀이터로 향하고 있다. 플레이코치들은 60여 가지 놀이 방법과 아이들이 문제가 생겼을 때의 대처 방법들을 기록한 자체 매뉴얼을 기반으로 놀이활동을 진행한다.

강씨는 플레이코치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제가 어릴 적엔 친구들이 휴대전화나 메신저를 잘하지 않았음에도 놀이터에 나가면 항상 또래들이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때에 비해 놀 공간도, 연락 수단도 잘 마련돼 있지만 놀이터가 텅 비어 있거나 혼자 놀고 있는 아이들뿐이어서 매우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시가 지난해 아동·청소년의 방과후 여가활동에 대해 조사한 결과, 대다수의 아이들이 집에서 숙제 등 공부(48.5%)를 하거나 학원이나 과외(44.1%)를 다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하는 활동 1∼5위 중 놀이활동은 없었다.

플레이코치에 대한 아이들과 학부모의 반응은 뜨겁다. 신체활동에 익숙하지 않았던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컴퓨터 게임이나 텔레비전을 보며 자라 대인관계가 서툴던 아이들은 놀이 과정을 통해 규칙과 배려심을 배우고 있다.

이날 놀이터에 아이를 데리고 온 한 어머니는 “아이들끼리만 놀면 게임에 한계가 있지만 선생님들이 프로그램을 연계해 놀이활동을 하니 아이들이 더 신나할 뿐만 아니라 규칙을 만들고 지키는 법도 배워가고 있다”며 “이젠 토요일에는 어디 다른 데 가자고 해도 아이가 놀이터에 가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어머니는 “혹시 모를 위험한 일이 걱정돼 아이를 놀이터에 잘 보내지 않는다”면서 “그런데 이제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게임을 함께 하니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