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최근 컴백 소식을 알린 대표적인 가수로 정미조가 있다. ‘70년대 최고 디바’라는 찬사를 받으며 인기 절정에 올랐다 돌연 가요계를 은퇴한 그가 새 앨범을 들고 찾아온 것. 1979년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 정미조는 그동안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새 앨범 ‘37년’을 신곡 11곡과 본인의 히트곡을 재해석한 2곡 등 총 13개 트랙으로 꽉꽉 채웠다.
정미조 |
데뷔와 동시에 이지적인 외모와 기품 있는 목소리로 주목받은 그는 군사정권 시절 ‘휘파람을 부세요’, ‘불꽃’ 등의 노래가 퇴폐성이 짙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자 은퇴에 더욱 마음을 굳히고 외국으로 떠났다. 화려했던 가수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제2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 그는 지금까지 화가와 교수로 활동해 왔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팬들과 지나간 세월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 그를 무대로 불러들였다. 정미조는 이에 화답해 이번 앨범 출시를 맞아 오는 4월10일 생애 첫 단독콘서트를 연다.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 대부분도 함께 무대에 오른다. 최백호와 한국의 독보적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가 출연할 예정이다. 오랜만에 가요계로 돌아온 그를 위해 동료 가수들도 힘을 모았다. 재즈음악가 손성제가 프로듀서를 맡았고, 정수욱 등 후배 음악가들도 참여했다.
컴백한 정미조는 이전보다 더욱 더 넓어진 음악적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더욱 깊어진 음색으로 발라드는 물론 탱고, 보사노바까지 넘나든다. 그렇다고 옛 시절 감성까지 잊은 것은 아니다. 다양한 장르 안에 과거 대중의 귀를 즐겁게 했던 자신만의 매력을 넣어 녹였다. 그는 “젊은 사람들도 정미조의 노래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한다.
정미조와는 달리 여섯 살 때 노래를 시작해 반세기 이상 노래만을 고집했던 하춘화 역시 데뷔 55주년을 맞았다. 1961년 ‘효녀 심청 되오리다’로 데뷔한 그는 지난 1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념 콘서트를 열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목소리와 가창력은 더욱 원숙해지고 깊어졌지만 마음만큼은 신인이었던 ‘소녀감성’ 그대로라는 그다. 그는 국민가수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을 만큼 대중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사회에 돌려주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하춘화는 지난 공연에서 벌어들인 수익금 1억2000만원을 쾌척,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했다.
윤항기 |
윤항기는 뮤지컬 배우이자 가수인 윤복희의 오빠로 1959년 작곡가 김희갑이 악단장으로 있던 에이원쇼를 통해 처음 무대에 섰다. 이어 대한민국 최초 록 음악밴드인 ‘키보이스(Key Boys)’를 결성했다. 키보이스의 앨범 ‘그녀 입술은 달콤해’는 국내 그룹사운드 첫 앨범으로도 알려져 있다. 로큰롤과 블루스, 록발라드, 트로트 등 해외 록밴드의 음악과 비슷하면서도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선율과 가사를 썼다. 이에 윤항기는 자신을 “외국인 앞에서 노래를 부른 케이팝의 최초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솔로가수로 데뷔해 ‘별이 빛나는 밤에’, ‘장밋빛 스카프’, ‘이거야 정말’ 등의 주옥같은 히트곡을 남겼다. 하지만 30여년간 가요계를 떠나 목회자로 있던 그는 2014년 목회자에서 은퇴하고 그를 그리워하는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