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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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다문 숨은 표심 ‘막판 뒤집기’로 나타나

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 지음/김경숙 옮김/사이/1만8000원
침묵의 나선 - 사람들은 실수보다 고립을 더 두려워한다/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 지음/김경숙 옮김/사이/1만8000원


“우리 지지자들 중 상당수는 여론조사에 노출되지 않는다. 투표함 뚜껑을 열면 다른 결과가 나올 거다.” 이 말은 선거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멘트다. 자신의 노출을 꺼리는 지지자들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침묵하고 있다가 비밀투표가 보장되는 투표장에서는 ‘본심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이 책은 침묵하는 다수의 심리 상태를 분석한 것이다.

저자는 독일 여론조사 기관인 알렌스바흐(Allensbach) 연구소를 설립하고 세계여론조사협회 회장을 지낸 여론조사 권위자다. 시카고대 정치학 교수와 마인츠대 커뮤니케이션학 교수를 거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저자는 1965년 당시 서독 총선 이야기로 시작한다. 선거 전 ‘디 차이트’를 비롯한 독일의 모든 언론과 여론조사는 사민당의 승리를 확실시했다. 정작 개표 결과는 기민당의 압승이었다. 선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한 곳은 딱 한 군데였다. 바로 이 책 저자가 설립, 운영 중인 알렌스바흐 연구소였다. 아울러 선거 사흘 전 실제 선거 결과와 비슷한 예상 득표율도 내놓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시 저자가 내놓은 예측 방법은 ‘침묵의 나선’ 이론이다. 이는 다음 4단계를 거친다.

사회는 다수 의견에서 떨어져나온 개인들에게 ‘고립의 위협’을 가한다. 개인들은 시시때때로 ‘고립의 두려움’을 느낀다. 이 때문에 개인들은 ‘주변의 분위기’를 끊임없이 살피려 애쓴다. 이 결과가 남들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명할지 침묵할지’에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타인이 혹은 다수가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강하게 어필할 때, 사람들은 고립의 위협을 느끼는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측정해보았다. 조사 결과 실제로 침묵의 나선 현상이 광범위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고립의 두려움이 침묵의 나선의 동력’이라는 가설을 냈다. 이 결과를 토대로 1972년 도쿄에서 열린 세계심리학회에서 ‘침묵의 나선’ 이론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선거에서도 침묵의 나선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2010년 지방선거, 2014년 지방선거가 대표적이다. 2010년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두고 발생한 천안함 사태 발생 당시, 여당의 압승을 예상하는 여론조사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대부분 접전지역에서 여당은 패했다.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여당의 오세훈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야당의 한명숙 후보를 12∼20% 차이로 여유있게 이길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오 후보는 신승했다. 47.4%대 46.8% 간발의 차이로 이겼다. 왜 이런 일이 나타났는가? 당시 ‘천안함 사건’은 최대 이슈였다. 이 정국에서는 여당 지지층은 목소리를 높였지만 야당 지지층은 침묵했다. 여론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은 ‘침묵의 숨은 표’가 실제 선거에서 상황을 뒤집은 것이다.

특히 다른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자신의 지지 성향을 밝히거나 침묵 속으로 숨는 경향은 더 강해진다. 숨은 표로 인한 ‘막판 뒤집기 현상’(last minute swing)은 침묵의 나선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 자신의 의견이 다수의 여론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한 숨은 표심은, 여론조사에서는 입을 다물어 버린다.

정승욱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