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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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뜨락] 먼저 가는 것들은 없다

송경동

몇번이나 세월에게 속아보니
요령이 생긴다 내가 너무
오래 산 계절이라 생각될 때
그때가 가장 여린 초록
바늘귀만 한 출구도 안 보인다고
포기하고 싶을 때, 매번 등 뒤에
다른 광야의 세계가 다가와 있었다

두번 다시는 속지 말자
그만 생을 꺾어버리고 싶을 때
그때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보라는
여름의 시간 기회의 시간
사랑은 한번도 늙은 채 오지 않고
단 하루가 남았더라도
우린 다시 진실해질 수 있다

-신작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창비)에서

◆ 송경동 시인 약력

▲1967년 전남 벌교 출생 ▲2001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 ▲천상병시문학상, 신동엽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