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드 펠프스 지음/이창근, 홍대운 옮김/열린책들/2만5000원 |
미국 컬럼비아대 정치경제학 교수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2006년) 에드먼드 펠프스의 최신작이다. 자본주의가 망가진 지금, 진정 풍요로운 삶과 사회는 어떻게 다시 올 수 있을까? 지난 150년간의 자본주의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분석하고, 향후 세계 경제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거시경제학 대가로서 통찰이 집약된 수작이다.
펠프스 이론에 따르면 번영이란 단순히 경제적 풍요만이 아니다. 다수의 개인들이 도전하고 혁신하며, 일로부터 만족을 얻고 보상을 받는, ‘좋은 삶’을 영유하는 것이 번영이다. 이런 좋은 삶이 ‘근대 경제’의 원동력이었다. 근대 경제란 미국과 영국 등의 ‘자본주의 경제’를 가리킨다. 상업 자본주의에서 진화한 근대 경제는 19세 초부터 놀라운 번영을 구가했다. 무엇이 달라졌기에 그랬을까? 대부분 학자들은 과학 혁명과 산업 혁명에 따른 생산성 도약이라고 설명해왔다. 그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개인들의 무수히 많은 작은 혁신 때문이었다. 대번영(Mass Flourishing), 즉 대중 번영이란 오직 이 요건이 충족될 때만 가능했다. 이를테면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실제로 경제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 그보다는 기층 대중으로부터 일어난 거대한 혁신, 즉 ‘자생적 혁신’이 경제에 역동성을 불어넣어 산업혁명의 꽃을 피운 것이다.
근대 경제가 현대인에게 선사한 것은 ‘일의 경험’이었다. 근대 경제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민중들의 생활 수준은 분명히 개선되었다. 평균 임금이 상승했고 실업률과 빈곤, 불평등이 이전 시대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칼 마르크스가 비판한 자본주의는 근대 경제로 인한 폐해라기보다는 근대 경제의 출현에 따른 사회적 혼란의 하나였다. 빅토르 위고가 묘사한 것도, 근대 경제가 작동하는 프랑스의 모습이 아니라 루이 왕정에 대한 시민의 반발이었다. 마르크스의 비판은 일종의 사회적 거부감에서 비롯되었다. 이로 인해 사회주의가 등장했고, 유럽을 휩쓸었다. 하지만 현대사의 경험에 비춰봐도 근대 경제, 즉 자본주의는 언제나 사회주의를 압도했다.
그러나 근대 경제가 사라져버렸다. 치명적인 요인은 코포라티즘이었다. 근대 경제가 모험, 도전, 혁신 같은 근대적 가치를 옹호했다면, 코포라티즘은 안정, 조화, 질서, 연대 같은 전통적 가치를 옹호했다. 코포라티즘은 당연히 기득권층의 이익과 연결됐다. 이는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하며, 자생적 혁신을 막는 여러 장치와 규제를 양산했다. 근대 경제의 선도적인 국가들, 즉 미국과 영국 등은 혁신의 동력을 잃고 성장을 멈추기 시작했고, 유럽 경제 역시 곧바로 침체에 빠져들었다.
구체적으로 근대 경제는 1960년대 이후 쇠락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기업 규모의 거대화’는 의사 결정을 더디게 함으로써 역동성을 훼손했다. ‘단기 성과주의’와 경영자 그룹에 대한 ‘과도한 보상’은 기업의 장기 전망을 어둡게 했다. 주식이나 투기를 통해 수십억씩 버는 사람들이 출현하면서 ‘돈에 대한 탐욕’은 극대화된다.
코포라티즘적 가치관은 분명 개인의 행복에 기여했다. 그러나 ‘일의 경험’을 핵심 가치로 보지 않으며, 자생적 혁신과 번영 경제에는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각자의 최고선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근대 경제 즉, 아래로부터의 혁신과 그것을 장려하는 문화와 제도가 국가 번영의 핵심”이라고 결론지었다. 2012년 처음 공개된 이 책은 중국에서 창커(創客, 혁신 창업자)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창업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