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쇼토 지음/허형은 옮김/책세상/2만3000원 |
암스테르담에서 ‘카페’와 ‘커피숍’은 전혀 다른 곳이다. 가벼운 식사와 음료를 파는 곳이 카페라면, 커피숍은 커피와 마리화나, 해시시를 함께 맛볼 수 있다. 네덜란드에서도 마약 거래는 불법이다. 하지만 커피숍 내에서는 허용된다. ‘불법이지만 눈감아주는 것’을 ‘헤도헌(gedogen)’이라고 한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금지하지 말고 통제하는 게 낫다’는 논리다. 성매매가 합법인 곳도 암스테르담이다. 연간 5000∼7500명의 여성들이 허가를 받아 돈에 몸을 맡긴다. 마찬가지 논리다.
1971년에는 1년 이상 비어 있는 건물에는 누구나 들어가 거주할 수 있는 법도 만들어졌다. 세계 최초 동성 커플 네 쌍이 결혼한 곳도 이 도시에서다. 이 책은 이 도시의 자유로움에 매료된 미국인 역사가이자 저널리스트가 썼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살았던 저자는 경쾌하고 위트 있는 문장으로 이 도시의 메시지를 전한다. 과거와 현재 역사를 토대로 이 도시에서 화려하게 피어난 ‘자유’와 ‘진보’의 역사를 묘사한다.
17세기에 해부학 강의실로 사용된 건물이다. 화가 렘브란트가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를 그린 장소로 유명하다. |
다문화사회라는 개념은 1970년대 이 도시에서 맨처음 생겨났다. 다문화는 문화적 소수자들을 수용하고 지지해야 한다는 개념인데, 암스테르담이 선구적 역할을 했다. 비서양권 이민자들을 환영했고, 그들 조국의 언어와 전통을 고수하도록 장려했다. 지원금까지 제공했다. 그러나 지금 이 도시의 다문화주의 정책은 실패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 대신 단절된 울타리 문화만 남았다. 게토화된 공동체만 존재하는 사회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서로 융합하면서 고유의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 결국 관용에 관한 논의다. 저자는 암스테르담 역사를 통해 관용의 메시지를 던진다.
카날하우스 모습이다. 17세기 지어진 암스테르담의 ‘카날 하우스’가 인류 최초의 근대적 의미의 집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열린책들 제공 |
지면을 채운 등장 인물들은 렘브란트나 스피노자, 안네 프랑크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들이다. 이들의 생애는 공통적으로 자유주의라는 주제, 암스테르담이라는 키워드와 관련이 있다. 그들은 이곳에서 꽃핀 자유주의와 운명 공동체처럼 엮여 있다. 저자는 “암스테르담에서 불과 5년여밖에 살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곳을 고향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