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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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태초의 지구인가 … 우주의 행성인가

[박윤정의 웰컴 투 아이슬란드] 〈1〉 불과 얼음의 나라
여행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낯선 공간, 낯선 시간 속으로 떠나는 행위’다. 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삶을 지속시켜 주는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국내를 두루 돌아본 사람은 자연 외국으로 발길을 돌린다. 가까운 일본, 중국, 동남아를 섭렵하면 서유럽, 인도, 호주, 뉴질랜드에 이어 북미, 남미, 동유럽, 아프리카를 탐한다. 그 다음 남은 곳은 극지방뿐이 아닐까? 먼저 눈과 얼음, 오로라로 상징되는 아이슬란드를 안내한다. ‘얼음의 나라’라는 선입견을 떨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훌쩍 떠나 보자.


아이슬란드는 거대한 빙하와 만년설, 용암, 호수로 이루어져 있다. 곳곳에 보석처럼 숨어 있는 초원에서 사람과 말들이 조화롭게 살아간다.
TV에 매달리진 않지만 직업 때문인지 ‘꽃보다 ○○’ 시리즈는 꼭 보게 된다. ‘할배’는 아직 아니고, 그렇다고 ‘누나’라 하기엔 조금은 애매한 연배다 보니 낯선 곳에 던져진 젊은 연예인들의 고생담이 생생한 ‘청춘’ 시리즈에 더 마음이 간다. 사실 여행 프로그램은 예전부터 쭉 있어 왔다. 그런데 연예인들을 출발 몇 시간 전에 불쑥 공항으로 불러내 낯선 땅에 투입하는 프로그램이 매번 시청률 대박 나는 이유는 뭘까? 답은 모두 알고 있다. 낯익은 연예인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묘한 쾌감이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들은 외려 당당해진다. “그래, 부족한 준비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어쨌든 우리는 떠나왔어. 그리고 무엇보다 우린 젊잖아!” 결국, 시청자는 그 ‘젊음’에 매료되는 것이다.

아이슬란드는 거대한 빙하와 만년설, 용암, 호수로 이루어져 있다. 곳곳에 보석처럼 숨어 있는 초원에서 사람과 말들이 조화롭게 살아간다.
여행을 오래하다 보니 출발하기 전에 걱정이 너무 많은 분들을 종종 보게 된다. 바쁜 일상에서 어렵게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것이니 이해는 간다. 그러나 때로는 꼼꼼한 준비 못지않게 낯선 곳에 자신을 과감히 던져놓는 무모함이 여행의 참맛을 느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켈라비크 공항 인근 들판에 이름 모를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극지방이지만 여름은 여느 유럽 나라들처럼 따듯하다.
사람들이 꽃보다 시리즈에 매료되는 또 다른 이유는 여행 패턴의 변화다.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여행이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요즘은 패키지여행보다는 ‘나만의 여행’에 대한 요구가 높다.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유명 관광지를 짜인 일정에 따라 순회하는 ‘보는 여행’을 탈피해 각자 자기만의 방식과 자기만의 장소를 찾는다. 직접 여행계획을 짜거나 남들이 가지 않은 여행지만 고르는 수요가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그렇게 새로운 여행 방식과 여행지를 꽃보다 시리즈가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꽃보다 시리즈 중에 가장 놀라운 비주얼을 연출해 준 곳은 ‘아이슬란드’였다.

켈라비크 공항 인근 들판에 이름 모를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극지방이지만 여름은 여느 유럽 나라들처럼 따듯하다.
‘꽃보다 청춘’보다 한 발 앞서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여행한 필자는 화면 속에 비친 모습이 반갑기도 했지만, 역시 화면은 실제의 감동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아이슬란드는 국토의 약 80%가 빙하와 만년설, 호수, 용암지대로 이뤄져 있다. 빙하와 용암이 공존하는, 태곳적 지구를 그대로 간직한 자연의 경이로움을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화산지대 특유의 기기묘묘한 지형들, 화산재가 검은 숨을 토해내는 황무지, 빙하가 연출한 유빙 호수, 용틀임하듯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간헐천의 수증기, 용암이 만들어낸 노천온천 등 곳곳의 풍광이 여행객의 경탄을 자아낸다. 더욱이 2010년 3, 4월에는 에이야퍄들라이외퀴들 화산이 폭발하면서 유럽의 항공대란을 발생시킬 만큼 아직도 혈기왕성한 젊은 섬이다.

아이슬란드 자연은 영화로도 익숙하다. 판타지 소설의 대부 존 로널드 로웰 돌킨은 젊은 시절 이곳을 여행하며 ‘반지의 제왕’ 영감을 얻었다. 애니메이션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 역시 이곳에서 주요 장면의 스케치를 완성했다. 영화 ‘노아’에서는 노아 가족이 홍수 이전에 살았던 고대세계로 그려졌으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에서는 주인공이 탐험하는 얼음 행성과 물의 행성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또한 외계인 침공으로 폐허가 된 2077년 지구를 그린 톰 크루즈 주연의 ‘오블리비언’도 이곳에서 찍었다. 영화에서처럼 아이슬란드는 인간의 손길이 아직 닿지 않은 미답지로 남아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여행자들에겐 더욱 매력적인 땅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아이슬란드는 국토 대부분이 용암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화산재에 이끼 낀 모습이 마치 외계 행성을 보는 듯하다. 영화 ‘인터스텔라’ ‘오블리비언’ 등의 촬영지다.
그렇다고 아이슬란드가 ‘얼음 땅’이라는 별칭만큼 무시무시한 혹한과 척박한 자연환경만 지니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멕시코만류의 영향으로 여름은 상쾌한 날이 많고 겨울도 비교적 온화하다. 동그린란드 극해류와 북극성 기류의 영향으로 이따금 날씨가 급변하기도 하지만 변덕은 오래가지 않는 편이다.

유럽의 일부이기 때문에 주민 대부분은 노르웨이 바이킹족과 스코틀랜드·아일랜드 켈트족의 후예다. 옛 노르웨이어와 비슷한 아이슬란드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지만 영어로도 웬만한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적잖은 사람이 여행을 떠나기 전 언어에 대해 우려한다. 물론 말이 잘 통하면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지만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 아이슬란드인들은 동양인에 대한 호기심이 높고 여행객에게 친절하다. 보디랭귀지를 동반한 간단한 의사표현만으로도 충분히 교감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는 대한민국 크기의 국토에 33만명밖에 안 되는 적은 인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람 간 유대감이 높고 국민이 매우 온순하다. 더구나 유럽에서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많은 나라와 인접해 있는 유럽인들은 말이 아니라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충분히 존중하고 의사소통하는 법에 익숙하다.

아이슬란드는 국토 대부분이 용암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화산재에 이끼 낀 모습이 마치 외계 행성을 보는 듯하다. 영화 ‘인터스텔라’ ‘오블리비언’ 등의 촬영지다.
아이슬란드는 1944년 덴마크 지배를 벗어난 어엿한 독립 공화국이다. 1946년 유엔에 가입했다. 인구에 비해 소득이 높은 편이어서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08위인 178억달러(대한민국은 약 1조5000억달러)에 불과하지만, 1인당 GDP는 5만4331달러로 세계 6위다. 1인당 GDP만큼 국민 생활수준이 무척 높은 편이며 물가는 비싸다.

필자의 첫 아이슬란드 여행은 여름에 이뤄졌다. 계절별로 색다른 여행을 할 수 있지만, 역시 겨울에는 추울 것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했다. 물론 여름은 낮이 ‘매우’ 길고 겨울은 밤이 ‘매우’ 길다는 점도 영향을 주었다. 아이슬란드로 가기 위해서는 유럽 도시를 경유해야 한다. 핀란드 국영 항공사 핀에어와 독일 국영 항공사 루프트한자를 추천한다.

드디어 출발이다.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 항공기는 장장 11시간을 날아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으로 지친 몸과 유럽의 시차에 적응하기 위해 하루를 프랑크푸르트에 머문 후 연결 편인 루프트한자항공을 이용해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로 향했다. 푸른 바다를 지나 창 너머로 하얀 얼음을 이고 선 거대한 산들과 얼음이 걷힌 대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제 아이슬란드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www.minttou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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