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김모(38)씨는 집주인의 전세보증금 인상 요구에 못 이겨 결국 지난 1월 은행에서 2억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20평대 소형아파트를 구입했다. 원금은 오는 2021년부터 상환이지만, 매달 50만원씩 빠져나가는 대출이자도 버거운 상황이다. 김씨는 "월급날이 되도 카드값·공과금 등이 빠지면 별로 남는 게 없었다"며 "그런 와중에 매달 이자까지 내려니 주말 여가생활은 꿈도 못 꾸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가계 빚이 1200조원을 돌파했다. 1년 사이 122조원 늘면서 사상 최대치를 또 다시 경신한 것이다.
가계의 과도한 빚은 소비를 줄이는 요인이 되고, 금융시장에 충격이 발생할 경우 파급효과가 상당해 경제 전반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종종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는 '뇌관'으로 불린다.
한국은행은 최근 지난해 말 가계 부채를 나타내는 통계인 가계신용 잔액(잠정치)이 1207조원이라고 발표했다. 그동안 가계 부채가 1200조원을 넘은 것으로 추정됐을 뿐 공식 수치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가계 부채 1200조? "비공식 집계까지 합치면 더 된다"
경기 부양을 목표로 한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한은 관계자는 "예금은행의 경우 아파트 분양 호조에 따른 집단대출 수요 증가 등으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증가폭이 확대됐다"고 밝혔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현 수준의 가계 부채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금융시스템전반의 위기로 확산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가계 부채는 지금 수준만으로도 소비 여력을 줄임으로써 내수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 경기 회복의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가계 부채는 증가세가 빨라지며 한국 경제의 고민거리로 부상했다. 2002년 말 464조7000억원을 기록한 가계부채는 3년 만인 2005년 542조8000억원으로 500조원을 넘어섰다.
2006년에는 607조1000억원으로 급증했다. △2007년 665억3000억원 △2008년 723조5000억원 △2009년 775조9000억원 △2010년 843조1000억원 △2011년 916조1000억원 △2012년 963조7000억원 △2013년 1019조원 △2014년 1085조2000억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이에 정부는 가계 부채의 안정적 관리를 강조해 왔지만 가계 부채 증가세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소비 여력 줄여…내수 위축, 경기 회복의 걸림돌로 작용
지난해 가계 부채 증가율은 11.2%(121조7000억원)로 2006년(11.8%)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았다. 특히 가계 부채 증가 속도가 소득 증가율보다 훨씬 빠르다는 게 문제다.
통계청의 가계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소득 증가율은 △1분기 2.6% △2분기 2.9% △3분기 0.7%로 각각 집계됐다. 가계 부채 1207조원을 우리나라 인구수 5000만명으로 나누면, 1인당 평균 약 24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가계부채 문제가 걱정을 키우는 것은 금융위기를 촉발할 개연성 때문이다. 2008년 세계 경제를 흔든 금융위기도 미국에서 저소득층에 주택자금을 빌려주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금융당국은 가계 부채 규모가 금융시스템의 위기를 불러올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진단하고 있다. 최근 가계 부채를 늘린 계층은 고신용이나 중신용 등급이 많고, 연체율도 낮은 수준이라는 점에서다.
◆결국 빚 때문에 지갑 닫아…악순환 반복
다만, 가계 부채가 소비를 위축시켜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통계청 등의 '201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가계는 세금 및 건강보험료 등을 제외한 가처분소득의 25%를 대출 원리금을 갚는 데 사용했다.
가계 부채가 가처분 소득을 줄임으로써 지갑을 닫게 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가계 소비의 제약은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의 한 축인 내수 위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소비 위축의 우려가 큰 만큼 가계 부채의 질 개선과 더불어 양 조절에 나서야 할 때라면서 특히 저소득층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금리 상승과 소득 감소 충격이 겹칠 경우 채무불이행자가 증가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